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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정답을 만들지만, 인간은 의미를 만든다

by dionysos

<완벽한 정답의 시대, 그러나 비어 있는 문장들>


AI가 만드는 문장은 이제 틀리지 않습니다. 음악 추천은 ‘시간’, ‘날씨’, ‘기분’까지 고려하고, 뉴스 피드는 내 관심사에 딱 맞춰지기 까지 하죠.


세상은 점점 더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정답이 완벽해질수록, 무언가 빠진 느낌이 커지고 있습니다.


노래는 취향에 맞는데 마음엔 닿지 않습니다. AI는 “너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곡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날 내가 왜 그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은지는 모릅니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패턴을 이해하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이유를 이해합니다.


이건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AI 시대에 인간이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 그 질문의 시작점입니다.



<Spotify의 알고리즘과 BBC 라디오 DJ의 대화 사이에서>


이 차이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음악을 ‘추천’하는 Spotify, 그리고 음악을 ‘건네는’ BBC 라디오 DJ들...


한쪽은 알고리즘으로 사람을 분석하고, 다른 쪽은 사람의 마음을 해석합니다. 이 둘의 간극 속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정답은 충분한데, 왜 여전히 공허할까?”



<데이터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까?...>


Spotify의 알고리즘 – 사람을 데이터로 해석하는 기술 입니다.


Spotify의 추천 시스템은 인공지능 기술의 정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4년 인수한 AI 스타트업 The Echo Nest는 음악을 데이터로 쪼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각 노래는 수백 개의 수치로 변환되죠. 템포(tempo), 키(key), 리듬, 에너지, 긍정도(valence), 심지어 가사 속 정서까지 분석됩니다.


AI는 이 모든 데이터를 조합해 “너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냅니다. 이걸 Collaborative Filtering이라 부릅니다. 그 다음에는 자연어 처리(NLP)로 SNS·리뷰·가사에서 ‘감정 신호’를 감지하죠 마지막으로 Audio Modeling을 통해 비슷한 사운드 구조의 곡을 연결합니다. 이 세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는 게 바로 “당신을 위한 추천(Discover Weekly)”입니다.


Spotify는 세계 5억 명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루 약 2천억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결정은 수학적으로 완벽합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이 오히려 공허함의 시작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완벽한 예측이 불러온 어색한 침묵>


2023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Spotify의 AI는 사람의 감정 타이밍을 착각한다”는 분석을 냈습니다. “AI는 사용자의 청취 패턴을 시간·날씨·기기 정보와 연결하지만,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음악은 시간의 데이터가 아니라, 감정의 데이터로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AI는

“밤이니까 잔잔한 음악을 틀어야 한다.”
“금요일이니까 신나는 음악을 선호하겠지.”


이런 ‘확률 기반 정답’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확률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같은 금요일이라도, 어떤 이는 퇴근길이고, 어떤 이는 퇴사 통보를 받은 날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AI는 ‘시간’을 읽지만, ‘상황’을 읽지 못합니다.


Spotify가 내놓은 “AI DJ” 기능도 비슷합니다. AI가 내 이름을 부르고, 음악을 소개합니다. “Hey, I’m Xavier, your personal DJ.” 하지만 이 목소리를 들은 많은 사용자들은 “자연스러운데, 이상하게 공허하다”고 말했습니다.


AI는 사람의 언어를 흉내낼 수 있지만,
사람의 ‘의도’를 느끼게 하진 못하기 떄문입니다.



<BBC Radio 6 – 알고리즘을 이긴 인간 DJ들>


반면, BBC Radio 6는 스트리밍 전성시대에도 청취자 충성도가 오히려 상승한 몇 안 되는 채널입니다. 그 중심에는 DJ Giles Peterson이 있습니다. 그는 방송 전, 청취자의 사연을 직접 읽습니다. 그날의 뉴스, 날씨, 사회 분위기를 모두 참고하죠.


예를 들어 런던에 폭우가 쏟아진 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하루 젖은 신발로 버틴 여러분께 바치는 곡입니다.
Dry your soul with a bit of sunshine sound.”


그 말 뒤로 자메이카 재즈 밴드의 리듬감 있는 곡이 흘렀습니다. 청취자들은 SNS에 이렇게 남깁니다. “그 노래 한 곡이, 하루를 버티게 했다.”


BBC 내부 조사에 따르면, AI 추천 플레이리스트의 평균 청취 지속 시간은 23분, 인간 DJ 방송은 52분이었습니다. 무려 두 배 이상 차이를 보였죠.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AI는 음악을 ‘취향’으로 추천하고, DJ는 음악을 ‘상황’으로 건네기 때문입니다..



<데이터의 한계, 맥락의 시작>


AI는 패턴을 찾는 데 탁월합니다. 하지만 패턴은 맥락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Spotify의 알고리즘은 “이전 행동”을 기반으로 합니다. 즉, 과거의 ‘나’를 모델링한 다음, ‘비슷한 과거’를 반복하도록 추천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매일이 다릅니다. 슬픔의 원인도, 기쁨의 이유도 매번 다르죠. AI는 반복의 기술이고, 인간은 해석의 존재입니다.


BBC DJ들이 승리한 이유는 기술보다 이해의 순서가 달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AI는 ‘무엇을 듣고 싶은가’를 묻지만, DJ는 ‘왜 지금 이 노래인가’를 물었습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청취자에게 “내 얘기를 들어주는 누군가”라는 감각을 만들어 냈습니다.



<의미를 만드는 인간의 능력>


AI는 정답을 내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창작’까지 대체하려 합니다. 음악 추천에서 출발한 알고리즘은, 이제 소설, 그림, 심지어 감정 상담까지 확장됐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AI가 만든 ‘정답’이 의미로 이어진 사례는 드뭅니다. AI는 음악을 틀어줄 수 있지만, 음악을 ‘건네줄’ 순 없습니다. AI는 문장을 쓸 수 있지만, 사람의 ‘의도’를 대신할 순 없습니다.


의미는 데이터로 계산되지 않습니다.
의미는 공감, 타이밍, 맥락의 총합이라고 봐야 합니다.



<핵심 인사이트 – AI는 ‘패턴’을 이해하고, 인간은 ‘이유’를 이해한다.>


1️⃣ AI는 패턴을 읽는다.

“이 시간대엔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아.”

“이 문맥에선 이런 문장이 자연스러워.”


2️⃣ 인간은 이유를 읽는다.

“너는 오늘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지금은 이 곡이 아니라, 이 말을 들어야 할지도 몰라.”


AI의 해석은 확률이고, 인간의 해석은 관계라고 봐야 합니다.


결국 의미란, ‘틀리지 않는 정답’이 아니라 ‘닿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며 –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선곡’을 기다린다>


AI가 만들어주는 세상은 편리합니다. 내 일과, 날씨, 취향, 심지어 감정까지 자동으로 조율되죠. 하지만 그 정답은 종종 너무 완벽해서 낯설게 느껴집니다.


BBC의 DJ Giles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선곡하는 이유는, 그 음악이 누군가의 하루를 덜 외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한 문장이, Spotify의 2천억 데이터보다 인간적이었습니다.


AI는 정답을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의미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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