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AI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AI가 ‘두뇌’라면, 피지컬 AI(Physical AI)는 그 두뇌가 세상과 맞닿는 ‘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인공지능은 모니터 안에서만 존재했습니다. 말로 대화하고, 이미지로 그리며, 텍스트로 세상을 이해했는데요.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은 단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움직이는 존재’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얼월드(RLWRLD)가 공개한 ‘우유 따르는 로봇 손’ 시연은 그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손가락 다섯 개로 병뚜껑을 열고, 컵에 우유를 붓고, 흘리지 않고 멈추는 동작 — 인간에겐 단순한 일상이지만, AI와 로봇에게는 “감각·판단·행동”이 완벽히 통합되어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이건 단순한 로봇 제어가 아니라,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피지컬 인공지능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AI가 현실을 ‘조작’하기 시작한 순간>
리얼월드가 개발 중인 ‘RLDX 파운데이션 모델’은 손가락 조작(5-Finger Dexterity)을 중심으로 한 물리 행동 학습 모델입니다. 쉽게 말해, “손의 GPT”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손동작 수천만 건을 학습한 AI가 ‘잡다, 돌리다, 따르다, 옮기다’ 같은 동작을 이해하고 스스로 응용하는 것입니다.
이건 기존의 인공지능 발전 흐름과 완전히 다른 부분입니다. 지금까지의 AI는 언어(Large Language Models), 이미지(Vision Models) 중심이었다면, 피지컬 AI는 그 두 영역을 넘어 "행동(Action)"의 차원으로 진입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AI의 존재론적 확장을 의미합니다. “AI가 이제 세상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로봇공학자들은 이를 “Embodied Intelligence(체화된 지능)”이라 부릅니다. 즉, 데이터를 통해 학습된 인공지능이 현실의 물리 세계에서 자기 몸을 통해 반응하고, 실패하고, 다시 학습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 입니다.
<우유 한 잔을 따르기 위한 수천 번의 시도>
피지컬 AI의 진보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시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학습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컵의 위치는 매번 달라지고, 우유의 점도도 다르며, 빛의 반사로 시각 센서가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로봇은 ‘부드럽게’ 따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건 완벽한 정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불확실성을 감각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는 균형 감각 중심의 전신 모빌리티를, OpenAI는 로보틱스 재도전을 통해 파운데이션 모델을 로봇 제어에 접목하는 연구를, Figure AI, Agility Robotics 등은 인간형 피지컬 AI 모델을 상용화 중입니다.
이 모든 흐름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AI가 현실 세계의 오차를 ‘몸으로 배운다’는 점
<AI는 계산으로, 인간은 감각으로 배운다>
언어 모델이 데이터를 통해 사고를 모방했다면, 피지컬 AI는 감각을 통해 ‘살아있는 움직임’을 모방합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AI의 학습 방식이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AI는 실수를 통해 배웁니다. 컵을 기울이다 흘리고, 병뚜껑을 너무 세게 잡아 부수며, 물체를 집다가 놓친기도 하죠.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AI는 인간처럼 “적당히”라는 개념을 익히고 학습합니다. 즉, 완벽함이 아니라 적응 가능성을 학습하는 것입니다. 이건 지금까지의 ‘정답 중심 AI’가 도달하지 못한 지점입니다.
<시장의 변화 — 움직이는 AI의 경제적 파급력>
피지컬 AI의 등장은 단순히 로봇산업의 진화가 아닙니다. 이건 AI가 제조·물류·헬스케어·서비스의 영역으로 물리적으로 진입한다는 신호라고 봐야 합니다.
한국, 일본, 독일처럼 고령화·노동력 부족이 심화된 국가들에겐 새로운 엔진이 될 수 있고,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의 피지컬 AI는 “AI-as-a-Platform”을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즉, 특정 작업(예: 나사 조이기, 포장, 서빙)을 학습한 AI를 API처럼 모듈화하여 로봇 제조사나 기업이 바로 호출할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AI가 ‘손의 API’를 제공하는 세상
이건 노동과 산업 구조 모두를 다시 설계하게 만들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며-‘몸을 가진 인공지능’이 던지는 질문>
피지컬 AI는 인간의 일을 빼앗는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하지 못했던 ‘지속 가능한 손’과 ‘안정된 반복’을 대신 수행하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철학의 부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AI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금,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기계” 다음은, “느끼는 기계”일까? 아니면 “함께 일하는 동료”일까? 피지컬 AI의 미래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어떻게 ‘인간적인 방향’으로 체화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