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사진만이 남는 건데, 왜
내게는 형과 누나가 있었다.
형과 누나는 3살 터울,
누나는 나와 4살 터울.
나는 늦둥이 막내아들이었다.
내가 엄마와 헤어지던 무렵이
일곱 살 때였으니
형은 당시 열네 살의 사춘기 중학생이었고
누나는 4학년의 초등학생이었다.
이 둘도 너무 어린아이들이었으나,
막내에 비하면 의젓한 소년, 소녀였기에
그들은 엄마로부터 자초지종을
사전에 듣고 나보다 하루 먼저
그 집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어떠한 선택권은 없었다.
그저 어른들의 결정에 옮겨져 버린,
너무나 작고 여린 존재들일뿐이었다.
이 모든 일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물건을 떼러 전주에 자주 왕래하시던 아버지가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눈이 맞았고,
그 분과 새 살림을 차린 것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긴 시간
꾹 참고 살던 엄마였지만, 결국 아버지는
그 여자와 함께 살 집으로
거처를 아예 옮겨 가버리셨고,
우리 삼 남매도 결국에
그 집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었다.
형과 누나에 비해 너무 어렸던 막내가
너무나 안쓰러우셨던 것일까.
엄마는 나와 하루만 더 있기를 원하셨고,
그랬기에 나 홀로 나중에
봉고차에 타게 된 그런 스토리였다.
형과 누나도 그 괴로운 시간을 먼저
보냈을 생각을 하니,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표정들이 이해가 되었다.
아빠에 대한 미움, 새엄마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나를 보내버린 엄마를 향한 원망,
동시에 차오르는 넘치는 그리움까지.
그 소용돌이 같은 감정들에 항상 괴로웠지만
달리 방도가 있었겠나.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하는,
어린 시절의 형과 누나, 그리고 나였다.
" 아 맞다, 앨범! "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던 시대였기에
사진 한 장의 가치가 되게 컸다.
아버지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어디를 가든 거의 항상
오래된 필름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셨고,
다른 건 다 안 남아도
사진만은 남는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렇기에 앨범에는 수많은 사진들이
시간 순으로 잘 보관되어 있었고,
심심할 때면 한 번씩 앨범을 꺼내어 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이 당시 우리들의 큰 낙이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집에 안 계신 틈을 타,
우리 삼 남매는 집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앨범을 찾는 것을 들키게 되면 혼날 수 있으니
두 분이 오시기 전에 꼭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아주 열심히 찾아보았다.
" 찾았다!!! "
부엌 옆에 있는 조그만 창고에서
환희에 찬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조용히 한 방에 모인 우리였다.
마치 열면 안 되는 금서를 여는 것처럼,
정말 떨리는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 어린 순수함에,
사진을 통해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대한
큰 배신이라는 죄책감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잠깐의 망설임 뒤에,
형이 닫혀있던 앨범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 어..? "
이상했다.
앨범의 수많은 부분이 비워져 있었다.
분명 페이지마다 많은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앨범인데
한 페이지에 한 두장뿐,
아예 사진이 없는 빈 페이지도 있었다.
몇 장을 넘기다 우리는 깨달았다.
사진을 버렸다는 것을.
엄마가 함께 나온 모든 사진들을,
누군가 빼서 버려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 지금 집에 없는 두 사람이겠지.
엄마의 얼굴을 볼 방법이 이 앨범뿐이었는데..
이제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지면,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으면 엄마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늘 하던 말처럼,
사진만이 남는다는 말이 맞았던 걸까.
그렇게,
긴 하루들 속에서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