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꿈
새어머니는 생각보다 좋은 분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낳은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잘해준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최선을 다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형은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형은 어릴 적부터 무뚝뚝한 아버지보다는
엄마에게 많이 의존하는 아들이었는데,
사춘기 때 갑자기 새어머니와 살게 되었으니
급속도로 비관적이고 어두워져 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에 반해 누나는 극복형이었다.
아버지와 대화가 단절된 형과 나와는
달리 누나는 아버지와 곧잘 대화도 했고
새어머니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리고 동생인 나를 정말 안쓰럽게 여겼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나는 어느덧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내가 다녔던 첫 초등학교는 정문부터
학교 입구까지
꽤 긴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학교가 끝나고 내리막길을 걸어내려 가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들자, 한 여자가 손에 아주 큰
선물상자를 들고 뭉클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엄마였다.
사진 한 장 없이 3년이 지났는데도
한 번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무나 복잡한 감정들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그리움,
동의 없이 나를 차에 태워 보내버린 배신감,
3년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배신하는 이상한 기분까지.
3년 만에 만난 엄마 품에 달려가 안기기는커녕,
쭈뼛거리며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던 나였다.
그런 내게 다가와서
엄마는 무릎을 구부려 앉아
나를 안아주었다.
"아이고 우리 막둥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엄마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내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갔다.
학교 근처의 한 중국집에 도착해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주셨다.
어떤 대화들이 오갔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의 이 질문은 명확히 기억난다.
"우리 아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3년 만에 나타나서 이 무슨 질문인가.
아직도 나를 헤어질 당시의 일곱 살
아이로 보시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빠요."
"아이고, 그랬구나. 엄마 엄청 서운하네."
서운한 표정을 지으신 뒤,
이내 밝게 웃어 보이시는 엄마였다.
엄마는 가져오신 선물의 포장지를 뜯으셨다.
당시 큰 인기였던 만화영화
'전설의 용사 다간'의 장난감 세트였다.
그 나이의 남자아이들에게는
분명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도, 아주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 선물을 받고 나면
또다시 엄마와 헤어져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는 이별 이후
3년 만에 정말 뜬금없이 나타나서,
너무나 순식간에 사라지셨다.
뜬금없이 나와 헤어지더니
뜬금없이 자기 멋대로 나타나고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렸다.
그 꿈만 같던 날은 내 아홉 번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