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참 인사고충이 많다. 업무강도에 대한 고충은 물론이거니와 사람 고충도 만만찮다. 당연히 나도 인사고충이 있었다. 고충의 순간이 오면(고비가 오면) '인사고충 상담이 물밀듯 한다는데 인사과 사람들 안 됐다. 어떡해ㅠ'라는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부터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남는다. 고충의 순간이 오면(고비가 오면), 우리 회사가 이따금씩 받는 전보신청 - 시기가 예측도 안되지만 - 까지 기다릴 여유는 전혀 없다. 뜨문뜨문 울화가 치밀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쓰려 죽겠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런 순간이 1년 차 때 2번은 온 것 같다. 인내심이 그렇게 없냐고 비난하면 할 수 없지만, 그냥 내가 기계 부속품처럼 느껴지거나, 저 인간이랑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도 싫다는 생각이 들 때면 도저히 참을 도리가 없다.
첫 번째 고충은 '일' 때문이었다. 내가 입사한 부서는 안타깝게도 주 6일 근무가 필요한 곳이었다. 주 5일제가 도입된 지가 언제인데 주 6일을 하나 싶었지만, 이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나마 주말에는 늦잠은 잘 수 있다는데 만족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야근과 병행된 주말출근은 남아있던 내 체력을 앗아가 버렸고, 휴일에 긴장이 풀린 신입사원은 앓아눕기 일쑤였다. 대체 옛날 어른들은 이런 식으로 어떻게 일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가끔씩 연가를 써서 고향집에 갈 수 있었지만, 다시 세종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온실 화초는 연신 눈물을 닦아야 했다.
이런 근무환경보다 더 고역이었던 것은 우리 부서에서 내가 그나마 제일 '꿀을 빠는 자리'라서 어딜 가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못한다는 거였다. 어리바리 말단 신입직원이라 참 감사하게도 배려를 많이 받았는데, 나보다 사무관님이, 사무관님보다는 과장님이, 과장님 보다는 국장님이 더 고생하시니, 받은 배려도 되려 마음 불편했고, 나는 분명히 죽을 맛인데 감히 죽을 맛이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는 낯빛이 완전히 흙빛이 된 국장님의 눈가에 심한 경련이 이는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국장님에게 존경심이 들면서도 무서웠다. 나에게는 승진이 동기부여가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년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해도 나는 절대로 인정 받을 수 없다는 패배감마저 느껴지니 한계에 봉착했다. 당시 내 업무는 난도가 굉장히 낮은, 그냥 길에서 아무나 데리고 와도 할 수 있는, 단순 무한반복의 업무였고, 그래서 내 자존감은 곤두박질쳤다. 업무량은 버거운데 성취감은 1도 없었다. 월급도 적은데 보람은 그보다 더 적었으니 심적으로 힘들만했다. 주변에서는 이 순간이 나중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나를 타일렀지만 - 돌이켜보면 지금 나에게 큰 자산이 된 업무였지만 - 당시에 나는 큰 우울에 빠져있었다. 참 오래간만에도 '내일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 '내가 사라져야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참으로 위험했다.
그렇게 나는 인사과에 처음으로 인사고충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