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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Feb 15. 2024

인사고충 2

 그렇게 인사과에 보낸 나의 첫 인사고충 메시지는 효이 없었다. 일을 배우고 싶다는 탈을 쓰면서 건강악화를 가미했지만, 핵심은 주말까지 할애하며 부속품으로 살기는 싫다는 내용의, 온실화초가 쓸법한 인사고충은 깔끔하게 무시되었다. 일을 배우고 싶다는 포부를 그저 신입사원의 패기로 귀엽게 봤을까, 어쩌면 나에게 조언을 해줬던 사람들처럼 내 업무가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했을까. 들의 무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지만, 하루에도 수십 통씩 들어오는 메시지 사이에서 나의 업무고충은 얼토당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럴만했다.


 하지만 두 번째 고충은 사뭇 달랐다. '사람' 때문이었으니까. 그 사람은, 주변에서 좋은 사람과 일하게 돼서 부럽다는 평까지 들었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마음이 아프신 분이었다. 마음의 병도 감기처럼 전염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의 마음이 무너질 때면 맞은편에 앉은 나도 덩달아 무너졌다. 윗분들은 그 사람의 병명을 의식해서 그 사람이 아닌 나에게 그 사람의 업무까지 몰아줬지만, - 당시에도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되긴 했다 - 그 와중에 내 마음도 같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듯하다.


 일상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해할까, 그 사람이 혹여 잘못된 선택을 할까, 업무가 펑크가 날까, 불안은 불안을 불렀다. 차라리 상사가 나에게 못됐게 대하거나 너무 무능해서 못 봐주겠는 클리셰적인 고충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내가 겪은 이런 이한 고충은 동료들에게 마음껏 뒷담화하기도 찜찜하여 해소되지 못했고, 망가진 내 마음으로 인해 내 주변인들도 덩달아 피해를 봤다.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야 할 연인에게 온갖 짜증을 쏟아내고 있는 날 마주하면, 그냥 평일에는 연락하지 말자고 해버렸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말들만 뱉어냈다.


 그렇게 나는 그 사람과 일한 지 한 달 만에 인사과에 퇴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인사과의 반응은 지난 고충과는 달랐다. 인사과에서도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퇴사'라는 단어는 나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봄직한 좋은 소재였던 듯하다. 나는 냉큼 다들 기피하기로 유명한 부서에 차라리 보내달라고 했고, 수락되었다. 내 후임으로는 건장하고 강력한 정신력을 자랑하는 분 - 그 사람의 증상을 상세히 인수인계했는데 대뜸 본인은 그 사람을 이길 수 있다(?)고 하셨다 - 이 오셨다. 부서이동이 있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이상하게도 주말 근무를 했던 비상체제가 해제되었고(타이밍 무엇...?), 나의 불안증도 눈 녹듯 서서히 사라졌다.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부서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컸지만, 기쁨이 도무지 숨겨지지 않았다. 회사 입사 이후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무래도 사생활은 참으로 어렵다. 일이든 사람이든 곳곳이 지뢰밭이다. 누구는 힘듦을 숨겨야 윗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회사가 나를 성장시키는 공간이 되어야지, 나를 무너뜨리는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고비가 올 때 적극적으로 징징이가 될 것이다. 징징이에게는 분명히 구원의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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