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한 Jan 23. 2024

연말정산과 워라밸

  연말정산 시즌이다. 연말정산을 통해 마지막으로 한 해를 정리하며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된다. '13월의 월급은 얼마일까?' 두근두근 연말정산 모의계산을 눌러봤다. 작년에 연금저축도 시작하고 꽤나 돈을 많이 썼던 터라 분명 작년보다는 많이 받으리라. 기대감이 머쓱하게 '걔?'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환급 세액이 이게 맞나 싶어 연신 새로고침을 눌렀다.

 원인은 줄어든 내 연봉이었다. 연말정산이 급여소득을 기준으로 기존에 냈던 세액의 과부족을 판단하는터라, 같은 소비와 저축을 하더라도 급여가 적으면 돌려받을 돈이 적을 수밖에.


 나는 연차가 쌓이면서 총급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연차가 쌓이면서 나는 점점 뺀질이가 되어가고, 내 워라밸이 훌륭해지고 있으므로 그럴만하다. 작년에는 눈에 띄게 야근을 안 했다. 심지어 초과근무가 0시간인 달도 있었다. 초라한 월급명세서가 서운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저녁시간이 마냥 좋았다.

 나는 입사 2년 차에 과를 옮겨 주말을 온전히 자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되었는데, 주말에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어쩔 줄 몰랐었다.  작년에는 계를 옮겨 그보다 더 진일보하여 저녁이 생겼고, 도대체 평일 저녁에는 뭘 해야 할지 난감했다. 누구는 18시에 퇴근하면 개인시간이 없다고 탄식하던데, 처음으로 18시 땡퇴를 했을 때 나는, 왜 이렇게 남은 시간이 많은지, 하루가 왜 안 끝나는지 참 당혹스러웠다.

 저녁시간을 보내기 위해 유튜브와 각종 OTT들을 섭렵하고, 운동도 시작하고 그랬었는데, 꿀 같은 나의 저녁들의 결과는 월급감소와 그에 따른 초라한 연말정산이었다.


 워라밸과 급여가 반비례하지 않고 비례한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이 팍팍한 회사에서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나보다 급여를 많이 받는 상급자들은 회사에 착 달라붙어, 무참히 회사에게 흡혈당하고 있을 뿐이다.(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대단한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꿀만 찾는 꿀벌로 산다면 가뜩이나 미미한 월급 더 빈약해지기 십상이다. 정말 난제가 따로 없다.


 이번 연말정산은 예상치 못하게 나의 2023년 워라밸 리포트가 되어주었다. 이번 연말정산이 아쉬웠던 것은 비단 금액이 적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간 내 시간들을 의미 있게 못썼다 자책 때문이다. 누워서 폰만 보기보다는 차라리 생산적인 활동들을 했으면 덜 아쉬웠을 텐데 말이다.

 결혼준비를 핑계로 뺀질거리던 나는 비교적 널널한 부서로 옮겼다. 아마 내년에도 이 헐랭한 월급으로 연말정산을 받을 테다. 내년 연말정산도 탐탁지 않을 예정이지만, 내년 연말정산이 마냥 변변찮게 느껴지지 않도록 자기 계발이라도 빡세게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연말정산은 미뤄왔던 새해 다짐까지 한방에 해치웠다. 에휴.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삶의 터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