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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Jan 19. 2024

내 삶의 터전

 드디어 미뤄왔던 주민등록증 재발급과 운전면허증 갱신을 완료했다. 주소란에 적힌 '세종특별자치시'를 보자니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렇게 갈망했던 고향에서의 탈출인데, 어쩌다 보니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집순이를 넘어선 침대순이라고 자부했지만, 백화점은커녕 제대로 된 쇼핑거리도 없고, 빈 상가만 나열되어 있는, 밤늦게까지 하는 카페도 없으면서, 버스 노선도조차도 마음에 안 드는 - 나는 차도 없거니와 자전거도 못 탄다. - 세종에 떨어지니 내가 이렇게까지 밖순이 었나 싶을 정도로 우울감이 커졌다. ''있다 없으니까'의 타격감이 이렇구나' 확실히 체감되는 순간들의 연속이니, 내가 참 복에 겨워 살았구나 싶었다.


 아무튼 이렇다 보니 세종시에 살면서도 '나는 세종시민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었는데, 일련의 신분증 교체 작업으로 인해 나는 시쳇말로 '빼박' 세종시민이 되어버렸다. 이전에도 선거철이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면서 종종 서글픔을 느꼈긴 했지만 말이다.


 비단 세종시가 아니더라도 지역 살리기의 일환으로 시작한 여러 혁신도시 정책으로, 직장 이전과 주거 이전을 당한 사람들이 꽤 있을 거다. 다 비슷비슷한 고충과 향수병을 겪고 있을 테다. 수도권 집중도 분명히 해결해야 하고 지방소멸도 막아야 하니 이런 분산이 필요할 테고, 이미 여기에 와버렸으니, 절이 싫은 중이 떠나야, 개인의 고충은 해결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돈벌이는 해야 하니, 그나마 해결법은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 그래서 세종을 좋아해 보려고 한다.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 세종, 식물 좋아하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국립세종수목원, 연말연시 근사한 불꽃놀이를 하고, 최근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강연까지 오는, 발전만이 남은 세종시. 세종이 미래다.

 다만, 아직까지는 서울에서 각종 행사와 회의가 진행되니 출장이 너무 많은 게 아쉽다. 비록 출장비는 쏠쏠하지만, 내 행정력과 시간과 체력은 길에서 그냥 낭비되는 거니깐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또다시 서울 출장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이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역시나 새로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생경한 아파트들이 쭉쭉 올라가고 있고, 반짝반짝한 새 아스팔트 도로가 옆으로 쭉쭉 뻗어가고 있다. 앞으로 세종이 행정수도로서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민등록증에 찍힌 주소로 열심히 애정해보려 한다. 내 삶의 터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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