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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Jan 17. 2024

부처 선택의 기로

- 거기서 거기

 새해가 밝아왔다. '올해는 어떤 새로운 희생양들이 들어오려나~' 기대... 는 하지 않는다. 4년 차가 되어버린 내게 신규직원의 등장은 그저 새로운 동료노비의 보충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각설하고, 국가직 공무원으로 합격하게 되면 부처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등록번호'라는 성적순에 따라 상위, 중위, 하위 부처 그룹으로 본인의 진로가 특정되어 버리지만, 자소서로 뒤집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개인 경험이다).


 어쨌든 부처선택 시즌이 다가오면 합격자 단톡이나 공무원 커뮤니티가 들썩이기 마련이다. 단톡에서는 여러 정보를 나열하며 대화를 주도하는 몇 명이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 이미 현직에 믿을만한 친구가 몇 있어, 나름 신빙성 있는 정보를 가진 나로서는, 저 전쟁에 '저 정보는 거짓'이라고 외치며 참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퇴양난에 빠지기도 했다. 쫄보인 나는 결국 그냥 그저 "키킥" 거리며 관망만 했지만, 아무튼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부처 정보는 사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막상 들어와 보니 좋아 보이던 상위부처가 알고 보니 생지옥이 따로 없고, 오히려 하위부처가 꽤나 끌리는 꿀통이라던가 그런 거다.


 나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상위권 부처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부처선택 원칙을 세웠다. 결혼을 하고 싶었으므로, 한 지역에 붙박이가 가능하고 순환근무가 적은 부처를 우선 선택하되, 그 안에서는 - 첫 타지살이임을 고려해 - 내가 아는 사람이 근무하고 있는 부처를 선택한다는, 가히 온실 화초다운 원칙이었다. 승진이니 업무강도니 부처파워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와서 보면 이 선택은 패착이었다.


 당시 부처지원은 1~3순위를 희망하는 방식이었고, 나는 1~2 지망은 성적보다 높은 부처를, 3순위는 성적에 맞는 부처로 안정적으로 지원하되, 1순위에 좀 더 끌리는 부처를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2순위 부처에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소서에 1순위 부처에는 인기과를, 2순위 부처에는 비인기과를 희망한다고 작성한 게 합격과 탈락의 원인이었던듯하다. 지금 와서 보면 당시 3순위 희망부처를 1순위에 적었어야 했다. 역시 패착이었다.


 사실 나같이 야망 없는 사람들은 직장간판보다는 나와 일하는 사무실 동료와 직속 상사, 내가 하는 업무에 크게 좌우될 뿐이다. 즉, '부서 by 부서'지 '부처 by 부처'는 아닌 것 같다. 어느 부처 건 내가 현재 근무하는 자리에 동료가 빌런이고, 무서운 상사에 업무가 감당이 안 되는 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부처마다 주로 다루는 정책이 다르고, 전반적인 분위기, 경향이라는 것은 있지만, 막상 입사하면 본인의 생각과는 안 맞을 수 있다. 다 거기서 거기다.


 친구가 얼마 전에 부처별 모집 정원을 카톡으로 보내왔길래 당시의 내 고뇌가 문득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모르겠다. 그래도 2순위로 원하는 곳에 온 나는 현재 내 부처에 만족을 하는지. 나라일터(공무원 인사교류 플랫폼)에 간간히 들어가 보지만 이내 흥미를 잃는다. 나의 선택이 최선이지 않을까 도로 주저앉는 것이다. 나는 항상 부처선택의 기로에 놓인 친구들에게 개인 소신대로 지원하고 결과에 낙담하지 말라고 한다. 어느 부처, 회사든 지옥자리와 꿀통자리가 있고, 그 안에서 살궁리와 보람을 찾는 게 관건이니깐. 다 거기서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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