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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Jan 15. 2024

탈출계획의 종착지

팍팍한 삶의 시작(월요일의 푸념)

나의 탈출계획의 종착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무원이었다. 그것도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가장 상한가를 칠 당시에. 공무원의 인기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당시 공무원 인기는 버블이었던 것 같다. 유능한 인재가 사기업이나 크리에이티브가 되어야 나라가 발전하지, 죄다 공노비가 되면 쓰나(공조직은 아무래도 혁신,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공무원은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뉜다. 국가직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와 같은 부처 및 그 소속기관의 소속이고, 지방직은 지방자치단체 및 그 소속기관의 소속이다. 다 같은 신분이지만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및 그 하위 법령에 따라 연가일수나 수당 등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시험도 별도로 치고, 하는 일도 다르다.


 나는 탈출을 꿈꿨으므로 국가직을 선호하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쫄보로서 집 코앞의 구청이 아른거리긴 했다. 시험과목이 동일해서 그런지 시험의 고수들은 여러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한다던데, 나는 어림도 없었다. 친구들의 연이은 합격에 신세한탄만 하다 엉겁결에 붙어버렸으니, 시험 하나만 붙은 것도 용하다. 다른 선택지는 없이 국가직 공무원이 되어버렸다. 탈출 성공.


 하지만 안타깝게도 탈출은 팍팍한 삶의 시작이었다. 국가직은 민원이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거르고 걸러진 민원의 정점이 국가직이었던걸. 멀쩡한 시군구청을 놔두고 중앙부처에 냅다 전화를 하거나 - 심지어 세종시에 올라와 부처투어를 하시는 민원인도 있다. - 지자체에서 감당이 안 되는 민원인들에게는 친절히 내 번호가 안내된다. 차라리 내 업무 관련으로 전화가 오면 다행이다. 내 업무가 아닌 민원의 경우에는 다른 직원을 연결해 주기까지 오만 욕을 듣기 일쑤다. 몇 분 이상 통화가 지속되면 끊어도 된다는 민원 대응 지침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분노에 찬 민원인의 말을 끊어먹을 깡이 없다. 나는 맹탕이다.


 초과근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일과시간에 민원과 쓸데없는 보고 대기와 무한 삽질 - 내가 쓴 보고자료는 늘 폐기처리된다. - 을 하고 나면 비로소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전화나 업무연락이 전무한 완전히 자유로운 저녁. 그제야 소위 말하는 노가다성 작업(단순 반복작업)을 한다던가, 밀린 잔업들을 하게 된다. 세종시 정부청사가 불야성을 이루는 건 이런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하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끔찍한 향수병에 시달리며 지방직과의 교류를 고민하기도 했다. 집 코앞의 구청이 아른아른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지방직도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긋지긋한 대면민원에 재난상황마다 무한대기라니.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누가 말해줬던 것 같은데, 어딜 가나 팍팍하지 않은 곳이 없다. 


 최근에 동기 한 명이 다른 직장으로 이직했다. 벌써 5번째 이탈이다. 온실 화초 출신인 나로서는 이 조직만큼 알맞은 곳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마저도 팍팍하다. 또 월요일이 시작되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입사 후 4년이 지나버린 나는 그동안 이 팍팍한 하루하루를 용케도 버텼다. 이번에도 역시 사막의 단비 같은 내 주말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버렸다. 직장인의 삶은 참 팍팍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다음 주말을 위해 그냥 되뇌며 버틸 수밖에. '좀만 더 버티면 주말이다! 힘내자!' 모든 직장인 여러분도 부디 힘내며 일주일을 버텨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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