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핸드폰에는 '디바이스 관리'라는 앱이 있다. 그 앱을 누르기만 하면 핸드폰에서 쓸데없이 실행되고 있는 앱들을 싹 정리해 주고는 'RAM ○GB 및 내장 메모리 ○GB를 확보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러고 나면 핸드폰 속도도 많이 빨라지고 쓸데없이 메모리를 차지하던 쓰레기 같던 것들이 정리된다. 일부러 앱을 실행하지 않는 한 정리된 앱들은 다시는 핸드폰에 나타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도 '디바이스 관리' 앱 같은 것이 있어서 필요 없는 것들을 싹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음만 먹고 딱 없애기로 생각하기만 하면 머릿속에 헝클어진 생각이나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 미운 인물들이 싹 사라지고, ' 나쁜 기억 10건을 지웠으며, 나쁜 놈 10명은 다시는 기억에 나타나지 않도록 정리하였습니다.'라고 알려 준 후 다시는 생각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잊어버리려 하는 기억은 자꾸 더 되풀이되고, 어떨 때는 더 또렷해지곤 한다. 미운 놈도 마찬가지다. 잊어버리려 떨치려 할수록 점점 더 머릿속에서 기승을 부린다.
후련하게 여행이라도 떠날라치면, 이놈의 기억이란 놈은 아스팔트 찌꺼기 마냥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깽판을 치니 어찌해야 할 노릇이란 말인가?
과학 기술이 더 발전한 후, 인간이 반기계반인간이 되면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과 기록들이 하드디스크 마냥 몇 TB씩 머릿속에 들어있어서 필요한 것들은 언제라도 꺼내 쓰고, 지우려고 하는 기억은 내 마음대로 지울 수 있는 시대가 올지 모르겠다.
사실 그런 시대를 예언하기도 했다. '유발 하라리'가 쓴 '호모 데우스'라는 책에서는 기계의 힘을 빌려 신과 가까운 능력을 갖추는 반기계 반인간의 신생 인류의 시대가 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새로 탄생한 인류가 지금의 현생 인류를 마치 지금 우리가 원숭이를 다루듯 다루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하였다.
내가 죽은 이후의 더 먼 미래의 얘기가 되겠지만, 그런 시대가 되면 아마 지금의 복잡한 인간적인 고뇌는 없어질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게 어찌 인간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냐마는.
이런 허망한 생각을 하며 글을 쓰는 내가 좀 갑자기 한심해지고 처량해지기는 하다. 그러나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요즘 들어 머릿속이 복잡하고 삶에 좀 지쳐 있으니까. 잊어버리고 어디로 휙 떠나고 싶으니까.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