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것들끼리의 요란한 첫만남
추적추적, 검고 짙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뚝뚝 몸을 때리는 빗방울, 매정하리만큼 차가운 공기,
혹시 정말 나만 나왔나 싶도록 휑뎅그렁한-
자정 무렵의 퍼스 공항.
이것이 퍼스가 내게 준 첫인상이었다.
이맘때는 세상 제일 따사롭고 눈물 나도록 화창한 봄이라고 했는데,
태풍을 동반한 폭우와 이례 없던 기상이변이라니_
뭐 하나 쉽게 좀 갈 수 없나.
"환영해. 하필이면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곳을 찾아왔구나!"
"... 히스 레저 때문에요."
한국인 아주머니와 영국인 아저씨 부부가 운영하는 셰어 하우스를, 새 첫 숙소로 정했다. 아무것도 없는 깡시골 바닷가 마을이어서_ 조금 정보도 얻고, 혹시 모를 상황에 도움도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집안에 물길을 만들며 꼴좋게 축축한 나에게_
경기가 한창인 프리미어 리그 채널과 수북이 쌓인 맥주 캔을 뒤로하고, 영국인 아저씨가 맥주 한 캔을 건네며_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넘치는 활기로 반가워해 주셨다.
'넌 왜 하필 '지구에서 제일 외로운 곳'에 온 거니'라는 말로 기뻐하며 환영하는 사람을 보면_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그렇다고 여기서도 '히스 레저'가 튀어나오다니_ 한심하다...
샤워를 마치고 짐 정리를 끝내니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었다.
한국보다 1시간 빠른 정도의 시차이니_ 한국은 4시겠구나. 광풍이란 게 이런 거구나 느끼게 해주는 바람, 차라리 하늘에서 내리는 낙숫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폭우 덕분에_ 낯 선 곳에서의 생경함과 비몽사몽 피로감이 더해져, 마음만은 굉장히 고요해졌다.
텅 빈 것처럼 휑한 방에 아저씨에게 받은 맥주 한 캔을 들고 비바람 소리에 시끄러운 창밖을 보고 앉았다.
뭐야 이 청승은. 갑자기 또 구질구질하게 헤어짐이 떠오른다.
괜찮았다가도, 멀쩡했다가도, 뜬금없이 치밀어 쏟아지는 그립고 허무한 감정에_
서른 어른이 첫사랑 앓이를 하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했다.
어디에 있을지, 뭐 하고 있을지, 어떤 생각을 할지_
지금쯤이면 퇴근했겠지, 이제 잠들었겠다,
오늘 같은 날씨에 꼭 방심하고는 그 옷 입고 나가서 엄청 춥다고 오들오들 떨겠지,
이 영화 봤으면 또 말도 안 된다고 온갖 비평을 해대면서 엄청 흥분했을 텐데...
이제 너무나도 훤히 알아서_
헤어져도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어디에 가도 네가 있으니, 나에겐 한국도 너무 좁았다.
금방이라도 찾아가고, 당장이라도 전화할 것 같아서 참고 참으며 쩔쩔맸다.
그렇게 너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지구 반대편에 왔다.
외딴곳에 혼자 고립되어 있어, 이 세상 가장 외로운 도시.
하필 지금 이런 모습으로 만난 퍼스와 나.
강렬하고 서글펐던 첫인상만큼, 그래도 모쪼록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