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의 신세, 무지개를 품은 마음
길고 긴 겨울 같은 날씨가 계속됐다.
한국의 살을 에는 추위와 시리고 건조한 바람은 없었지만, 하늘에서 온종일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가 하면_ 휘몰아치는 바람에 나무도 뽑히고 건물도 흔들릴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떨어져 흘러가는 빗소리와 창밖의 혼돈을 보며, '이래저래 외로운 곳 맞네.' 하면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이 방 안에서 지냈다.
먼 나라 외딴곳. 주소도 기억 못 할 낯선 곳에서-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비바람을 마주하니,
몸도 머리도 마음도 간소하기 그지없다.
그런 데서 오는 심플한 고요함이, 좋았다.
첫날부터 한동안 그렇게 포기한 듯, 즐기는 듯. 그 가득한 적막함에 빠져 지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게 됐어요?"
일 년에 300일 이상이 구름 한 점 찾아보기 힘들 만큼 눈부시게 맑고 쾌 창하 다는 이 곳에서, 하필 이럴 때 와서 숙소를 피난처 삼아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안됐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는지_ 당신들도 무척 적적하셨던지, 셰어하우스 아주머니 아저씨가 먼저 저녁을 함께 하자고 권해주셨다.
"공무원 비슷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좀 쉬어보려고 왔어요."
도대체 왜 그만두겠다는 건지, 이 취업난에 힘들게 겨우 들어가 놓고_
그야말로 그 '철밥통' 직장이 뭐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제 주제에 박차고 나왔는지_
몇 번이고 몇 군데고 여기저기 거절당하고 채여, 그렇게나 자괴감에 울고불고 찌질 대놓고서는.
그 기적처럼 들어간 회사를.
사회생활 그거, 원래 그렇게 힘들고 더럽고 속 쓰린 건데.
모두들 어떻게든 하루하루 견디며 참아내며 성실하게 살아내는데,
네가 뭐가 잘나서 그걸 못 참고 뛰쳐나오겠다는 거냐고_ 가족들, 친구들, 회사 사람들 모두 미쳤다고 했다.
다른 계획이 있어서도 아니고, 준비하고 있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창업에 뜻을 두고 경험을 쌓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상사가... 싫어서요."
'고작 그런 일로?'라는 마음이 찰나의 눈빛에 비쳤지만, 아주머니는 곧 '대단한 용기네.'라고 표현해 주셨다. 정부 일은 하는 게 아니라고, 잘했다고, 본인이라면 벌써 백 번은 나왔을 거라며 '이 나라가 얼마나 무능하고 어리석을지'에 관해 갑자기 호주 정부와 정치 이야기를 꺼내시는 아저씨 덕분에_ 어색한 공기는 이내 사라졌다. 역시 '공무'라는 것이 주는 답답함과 노여움은, 슬프지만 만국 공통의 정서가 되었나 보다.
"여기서는 뭐 해 볼 거예요? 여긴 확실한 기술이나 육체노동 아니면 할 일이 더 없을 텐데."
아, 여기서 살아내 보기로 했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길고 답답한 이 장마가 지나면, 퍼스의 말갛고 청량한 얼굴을 볼 수 있겠지.
다시 첫 발걸음, 새 시작으로_ 움직거려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