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우물은 나를 위해 판다

by 담유작가

‘난 왜 한 우물을 파지 못할까?’

문득 그런 자괴감이 들었던 적이 있다.

11년 동안 꾸준히 해오던 방송을 때려치우고 나올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첫 번째 우물은 방송이었다.

공채 아나운서가 되지 못해

프리랜서라는 다소 불안한 형태로 시작했지만,

그 일은 재미있었고 나를 빛나게 해줬다.


다행히 일도 끊이지 않았고,

과로로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했다.

나를 찾아주는 곳이 많았고, 그게 좋았다.


하지만 그 일에는 노조도, 퇴직금도,

심지어 경력증명서조차 없었다.

그저 ‘출연확인서’라는 모호한 문서 한 장이 전부였다.


결국 손에 쥔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 시간들은 지금의 학원을 시작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됐다.

내 첫 번째 우물,

빛났지만 불안했고, 치열했지만 외로웠다.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오게 된 이유는 결국 관계였다.

얼마 전 한 기상캐스터의 안타까운 죽음이 기사화된 적 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초 집단의 관계 형성은 지치고 험난했다.

내 일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던 11년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두 번째 우물은 강의였다.

이건 아직 과거형이 아닐 수도 있다.

‘강의였다’인지 ‘강의이다’인지 나도 헷갈린다.


무작정 이력서를 들이민

유명 학군지의 학원이 나를 받아줬고,

방송밖에 모르던 나는

교육 현장에서 우왕좌왕했다.


학부모 대응은 서툴렀고,

컴플레인은 생각보다 자주 들어왔다.

그러다 오기가 생겼다.

‘내 꺼 하자.’


그런데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왠지 내가 하면 될 것 같았다.

남편을 설득해 직장인 대출을 받고,

그의 퇴직금도 미리 당겨 받았다.

다행히 착한 남편이 내 말을 들어줬고,

나는 드디어 내 이름을 건 학원을 열 수 있었다.


진심을 다해 수업을 했고,

다행히 학원은 잘 됐다.


코로나로 문을 닫아야 할 때도

그만두지 않은 학부모들이 있었고,

몰래 문을 열 수 없냐는 말도 들었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학생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 기세를 몰아

몇몇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확장이전을 했다.


그땐 정말 ‘이게 내 천직인가’ 싶었다.

나를 갈아 넣어 일했고,

행복했고,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우물에서

또다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도, 결국 관계였다.


아이들도, 학부모도 아니었다.

문제는 강사들과의 관계였다.

늘 어려웠고, 늘 불편했다.


잘해주고 싶었지만,

언제나 들려오는 건 뒷담화였고,

몇 명이 몰려와 요구사항을 늘어놓을 땐

그냥 넘기기엔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정을 주지 말자’

스스로 다짐하지만,

어디선가 나를 겨냥한 온라인 글들과

그 말들에 나는 매번 흔들렸다.


그리고 학원을 그만두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서버리는 그 얄팍하고 희미한 관계들.



“원장은 늘 욕받이예요.”

누군가 내게 했던 말.

하지만 그건 욕받이를 넘어서

모두의 적이 된 기분이 드는 날들이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마음으로, 매일을 버텼다.


나의 첫 번째 우물은

세상과 부딪히며 당당하게 싸웠던 시간이었고,

전직 대통령들과 인터뷰도 했고,

‘태혜지’ 같은 스타들도 만났다.

빛났고, 벅찼고, 치열했다.


두 번째 우물은

따뜻했고, 다정했다.

하지만

감정노동과 책임감은

결국 내게 고혈압이라는 경고를 안겨줬다.


이제 나는

세 번째 우물을 파려 한다.


이번 우물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오직 나를 위한 우물이었으면 좋겠다.


말을 쓰고,

마음을 다듬고,

사람을 이해하는 글을 쓰고 싶다.


늘 해보고 싶었던

‘나를 위한 일’.

비로소 내가 마실 물을 위해 파는 우물이길 바란다.


세 번째 우물을 파는 지금,

나는 다시

삽을 들고 생각한다.



#자기돌봄

#일상회복

#심리글쓰기

#나를위한선택

#변화의시작


이전 09화나는 얼마짜리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