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거리4

호의와 불신 사이

by 담유작가

아이 하교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해 지하철 벤치에 앉았다. 잠깐의 여유를 즐기려던 그때, 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어요?”


“빌려드릴 순 없고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걸어드릴게요.”


“010-7….”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발신번호가 뜨는 순간, 내 번호는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남는다. 별일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요즘 같은 세상에 방심은 곧 위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내가 직접 걸어드리는 것’이었는데, 그것조차도 탐탁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바로 나가봐야 해서요.”


할머니의 황당한 표정을 뒤로 하고, 나는 출구 쪽으로 달음질쳤다.


휴대폰을 빌려주는 일. 사실 대단한 호의도 아니다. 나 역시 다급한 순간에 휴대폰을 두고 나왔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현실 앞에서는 겁부터 났다. 수없이 들려오는 보이스피싱, 범죄 소식들이 내 마음을 단단히 묶어버렸다.


만약 빌려드렸다면, 하루 종일 찝찝했을지도 모른다. 경계심 덕에 잘 피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동시에 낯 모르는 어르신이 꼭 필요한 연락을 하지 못했다면 어쩌나, 미안한 마음도 남는다.


어떤 선택을 했어도 불편했을 오늘, 정답은 있었을까?


어쩌면 이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그림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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