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하루가 길었던 날
2026. 02. 07
입말 24일차
내일 새벽, 남편이 귀국한다. 여기서 창이공항이 있는 싱가포르로 이동할 때는 보통 픽업벤을 예약해 여러 명이 함께 타거나 버스를 이용한다. 남편이 올 때는 운 좋게 픽업벤을 쉐어할 멤버를 구했었다. 하지만 돌아갈 때는 아무리 찾아봐도 함께 차를 탈 인원을 구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비 예보가 있는 날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버스를 타라고 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나 싶어 매주 주말 싱가포르로 나가는 유학원 셔틀에 문의를 했고, 다행히 취소분 자리가 있다는 답을 받았다. 차는 좁아 원칙적으로 캐리어를 싣지 않지만, 네 명이 취소한 덕분에 짐도 실을 수 있었다.
문제는 출발 시간이 아침 아홉 시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이 방법이 가장 덜 고생스러울 것 같아,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예약금을 먼저 입금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오늘 밤에나 나갈 줄 알았다가, 졸지에 아침 일찍 쫓겨나듯 떠나게 된 셈이다. 부랴부랴 짐을 싸고, 졸린 눈을 비비며 차량을 타는 곳까지 함께 걸어갔다. 시원섭섭한 마음과 함께 안쓰러운 마음까지 겹쳤다. 비행 시간까지 무려 열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남편은 싱가포르 입국 심사가 지연되었다는 이야기부터, 마리나베이샌즈에 내려 머라이언을 보았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메시지를 보냐왔다. 그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유명 유튜브에서 본 바쿠테 맛집에 가서 국물을 세 번이나 리필해 먹었다는 이야기, 다음에 함께 가고 싶지만, 후추 맛이 강해 딸아이는 먹기 힘들 것 같다는 말, 처음에 제공되는 물티슈를 써서 추가 요금이 나왔다며 아쉬워하는 이야기까지. 남편의 중계 덕분에 나도 함께 싱가포르에 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사이 조호바루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남편이 있는 싱가포르에도 비가 많이 온다며, 비 오는 차이나타운 사진이 도착했다. 비 오는 날 캐리어를 끌고 어떻게 다니냐고 묻자, 카지노에 보관하는 곳이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나보다 훨씬 스마트하게 여행하는 사람 같다.
남편의 바쿠테 사진을 보며, 우리도 바쿠테를 먹으러 갈까 하다가, 폭우 탓에 방향을 틀어 근처 신전떡볶이로 갔다. 로제떡볶이와 참치김밥을 먹으며 “우리도 그냥 싱가포르에 따라갔다 올걸.” 하고 괜히 후회를 했다.
근처 풀숲을 잠깐 산책하다 모기떼에게 잔치를 열어주고 말았다. 수영장에서 가려움을 달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 창이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고 했다. 캐리어를 든 사람이 자기 혼자뿐이라며, 조금 불안해 보이는 말투였다. 결국 버스에서 내려 15분이나 걸어 공항에 도착했단다.
남편의 하루가 참 길었겠다 싶었다. 게다가 비행기는 45분이나 지연되어, 남편의 열여섯시간은 열여섯 시간 사십오 분이 되었다.
남편을 걱정하느라 나의 하루도 참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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