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바루에 머무는 중입니다(26.02.08)

그랩 대신 버스

by 담유작가

2026.02.08

입말 25일차


처음에 말레이시아에 와서는 아무 생각 없이 그랩만 탔다.

그런데 환율이 너무 많이 오른 탓에, 그랩비가 식비보다 더 드는 날들이 잦았다. 그랩 요금은 시간대마다, 또 차량 수요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다 보니 돌아올 때 요금이 갈 때의 두 배가 되는 날도 많았다.


남편과 수요야시장을 갔던 날, 처음으로 버스에 도전했다. 가지고 있는 카드들이 모두 찍히지 않아 현금으로 요금을 냈고, 거스름돈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랩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다.


이곳에서 대중교통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이유는 지하철이 없고 버스 배차 간격도 너무 길기 때문이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비용을 조금 더 내고 빨리 이동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한 달 차가 다 되어가니, 그런 여행자의 마음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시간보다는 돈이 더 중요해졌다. –트래블 카드에 더 이상 충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오늘은 미뤄두었던 기념품을 사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곧 설이니 가족과 친척들 선물도 준비해야 했다. 우리는 ‘루고’앱으로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여유를 두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이곳의 버스 정류장은 표지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지부터 살펴본 뒤 티가 레지던스 건너편 정류장으로 향했다.


곧 J44번 버스가 도착했고, 어른 둘과 아이 한 명 요금으로 5링깃을 냈다. 특별한 안내방송이 없어 창 밖을 계속 주시했다. 20여분쯤 달리자 이온몰이 보였다. 5링깃에 올 수 있는 곳을, 그 동안 그렇게 큰 돈을 내고 다녔다는 사실이 새삼 어리석게 느껴졌다.


몰에 들어서자,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아동복 타임세일!

5링깃에 예쁜 바지를 팔고 있어 인파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딸과 조카들의 바지를 하나씩 고르고 줄을 서서 계산했다.


푸드코드에서 삼각김밥이며 연어회, 샌드위치를 골랐다.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먹을 수 있어 마음에 드는 곳이다. 음식도 정갈하고 입에 맞았다. 아이는 이곳에 오면 늘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두 개씩 집어 든다. 밥을 먹다보니 방금 산 바지가 눈에 밟혔다. 색깔별로 다 사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식사 후에 곧바로 다시 갔지만, 이미 타임세일은 끝! 역시 쇼핑은 타이밍이다.


아쉬운 마음에 옷가게들을 둘러보는데, 유니클로도 세일중이었다. 아이의 티셔츠 하나를 사고, 건너편 스포츠 매장에서 내 몫의 티셔츠도 하나 샀다. 오늘이 몰 세일하는 날인지, 지난번보다 전체적으로 가격이 저렴했다.

지하 슈퍼마켓에 들러 베릴스 초콜릿과 커피를 사고, 며칠 먹을 반찬거리도 구입했다. 딸은 셀프 계산기에서 바코드를 찍다 여러 번 실수를 했다. 남의 나라 슈퍼마켓에서 벌어진 훈육과 반항의 시간. 계산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KakaoTalk_20260211_112425635_02.jpg
KakaoTalk_20260211_112425635_01.jpg
KakaoTalk_20260211_112425635_03.jpg

버스 정류장에 나와 요금을 확인하는데, 잔돈이 없다. 버스는 8분 후 도착예정. 엄마와 딸을 남겨두고 혼자 다시 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스타벅스에서 물 한병을 사려했지만, 현금 결제가 되지 않았다. 다시 뛰어 SDS라는 빵집으로 향했다. 가장 싼 빵 하나를 집으니 1.9링깃. 10링깃을 내고 잔돈을 받자마자 다시 뛰었다.


정류장으로 가자마자 버스가 도착했는데, 푸테리 하버쪽은 반대편이란다. 반대편에는 정류장 표지판조차 없었다. 용감한 우리 엄마는 혼자 여기 저기 걸어 다니며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었다. 사람들이 정류장은 반대편뿐이라고 했는지, 엄마는 아까 거기로 다시 가자고 하고, 나는 여기가 맞다며 다시 언쟁이 시작되었다. 버스 기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왜 자꾸 그쪽이라고 하시는지.


다른 버스 한대가 우리가 서 있는 곳에 멈추는 걸 보고서야 언쟁이 끝났다. 하지만 다음 버스 도착까지는 50분이나 남았다. 그랩을 타자니 몇 배나 되는 금액이 아까워, 정류장 바로 앞 버블티집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랩비를 아끼자고 버블티를 마시다니, 스스로를 헛똑똑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그래도 지친 다리를 쉬며 시원한 버블티를 들이키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딸은 어학원에서 배웠는지, 버블티를 대만에서는 ‘보바’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돌아올 때도 버스 타기에 성공했다.

집에 갈 때가 되니 이곳에 적응이 되어간다. 남은 며칠도 잘 즐겨보자.


#조호바루한달살기

#말레이시아버스

#여행과생활사이

#엄마의시선

#이방인의일상


작가의 이전글조호바루에 머무는 중입니다(26.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