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앞두고 잠시 멈췄다

by 담유작가

잘 다녀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제 2주가 되었다. 오자마자 설연휴였고, 출장 갔던 남편은 다리를 다쳐 돌아왔다. 다음주부터 나는 두 부녀의 등하교와 출퇴근을 책임져야 한다. 분명 다시 분주한 일상인데,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숨이 턱 막히는 쫓김은 없다.


말레이시아행 비행기표를 끊은 이유는 번아웃이었다. 일에 치여 살던 어느 날, 나는 학원을 내놓고 긴 여행을 계획했다. 다시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쳐다보기도 싫었다. 만약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이유가 오직 돈 때문만은 아니길 바랐다.


‘한 달 살기’는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가보니 철저한 생활이었다. 고환율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고, 예산을 자꾸 넘어가는 생활비에 ‘괜히 왔나’싶은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곳의 하루는 길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나는 오랜만에 천천히 걷는 사람이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어느 날,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 공공기관의 강의 의뢰였고, 이상하게도 그 전화가 단비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를 지치게 한 것은 ‘일’자체가 아니라, 운영과 사람 사이에서 소진되던 시간이었음을. 내가 하는 일은 여전히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는 것도.


돌아온 뒤 나는 종종 ‘학교 일자리’사이트를 들여다본다. 시급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도, 아이 하교 전에 끝나는 시간을 보며 마음이 움직인다. 학원을 운영하던 시절, 정작 내 아이의 하루에 충분히 함께하지 못한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다. 적은 수입일지라도 아이의 등하교를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처럼 한 번쯤 멈춰 서고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40대의 일은 책임과 경제 사이에서 늘 줄타기다. 완전히 놓을 수도, 예전처럼 달릴 수도 없는 시기. 그래서 더 자주 숨이 찬다.


한창 바쁘게 살 때는 여행을 다녀온 뒤 밀려올 일을 생각하며 되도록 떠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인생의 2막을 열기 전, 나에게 허락된 인터미션이었다.



#말레이시아

#한달살기

#멈춤

#인생2막

#천천히







작가의 이전글안녕, 나의 일장춘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