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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23. 2024

어학원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

네? 집으로 가자고요?


 내가 다니는 어학원 반에는 한국인이 나 포함 단 두 명뿐이다. 그분이 한국인인 걸 단박에 알게 되었는데, 수업 중 선생님이 태국어로 식재료 이름을 맞혀보라며 문제를 냈는데 그분은 ‘버섯!’이라고 외치면서 웃었다. 그 말에 반응한 건 나뿐이었고 그 분과 나는 눈이 마주치면서 서로 같은 동지임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나보다 30살 정도 더 많은 소위 아저씨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태국어 선생님은 넉살 좋게 이미 아저씨를 ‘아조씨’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유교걸인 나는 아저씨에게 호칭이 어려웠다. 나 또한 아저씨라고 말하면 기분이 나쁘시지 않을까, 삼촌은 좀 오버고, ㅇㅇ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선생님이라 불렀다. 선생님은 태국어를 배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시는 우등생이었다. 수업 중 호탕한 웃음을 자주 짓곤 하여 다른 외국 친구들 또한 유쾌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유일한 한국인 동지로써 수업이 끝나면 잠시 대화를 하곤 했다. 오늘 수업에 관한 이야기나, 치앙마이 살이에 관한 정보 교류였다. 선생님은 좋은 카페나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추천해 달라고 하셨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나중에 수업 끝나고 근처 카페나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개인적으로 친구에는 나이와 성별은 상관없다는 주의기 때문에 나는 호탕한 선생님과의 만남 또한 즐거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생님께서는 한참 어린 나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쓰셨다.


 이따금씩 나보다 어른을 만날 때 당연하듯이 반말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나는 그런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긴 한다. 그저 말 편하게 하시는구나, 이게 더 편하시구나 하면서.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꾸준히 나에게 존댓말을 하시는데 이 부분이 오히려 선생님과의 친밀감이 더 높아진 포인트였다.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로, 세월로 당연하다는 듯이 대접받으려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약속당일 우리는 수업 후에 맛집을 찾아가 함께 밥을 먹고, 카페를 갔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제법 괜찮았다. 우리에겐 한국인과 치앙마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대화 주제는 끊이지 않았다. 나보다 몇 개월 정도 일찍 오신 치앙마이 선배님이셨고, 그전부터 자주 치앙마이 왕래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홀로 1년 동안 치앙마이 살기를 하고 계신다고 말하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친구가 많이 없어서 아직 치앙마이 근교나 유명한 관광지를 많이 가보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학원을 가는 날이 아니면 대부분 도시 안에서 놀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와 선생님이 공통적으로 궁금한 곳이 있었는데 바로 싼캄팽 온천마을이었다. 진짜 온천을 즐기는 곳은 아니다. 그저 발만 담그고, 리얼 온천 계란을 먹을 수 있는 넓고 퍼블릭한 여행지니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여하튼 말 나온 김에 우리는 둘 다 약속 없는 평일에 함께 바람이나 쐬고 오기로 했다. 선생님은 직접 차를 운전하시니,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싼캄팽까지 가기 위해서는 좁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대절해야 하니까 말이다.




 친절한 선생님은 아침에 내가 사는 숙소까지 픽업을 오셨다. 나는 선생님에게 수건은 챙기셨냐고 물었고, 당연하죠,라고 대답하시어 우리는 마음 편하게 싼캄팽으로 출발했다. 치앙마이 도심에서만 지내다가 근교로 나오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낮은 건물들이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더 낮아졌고, 너른 풍경들이 가득했다. 하늘이 코 닿을 듯이 느껴졌다.



 가는 길에 주유소가 있어서 잠시 내렸다. 치앙마이는 주유소 옆에 대부분 편의점과 카페가 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에게 운전을 해주시는 보답 중 하나로 일단 커피를 사드렸다. 우리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손에 들고 다시 싼캄팽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갑자기 선생님이 사는 콘도가 이 근처라고 말하셨다. 이렇게 멀리서 나를 픽업하러 오신 거냐, 돌아서 오시느라 힘드셨겠다고 거듭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그 순간 선생님은 자기 집이나 한 번 구경하고 가세요. 하면서 운전대를 콘도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 집? 집이요?


 선생님이 사는 콘도는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도심에서 벗어나면 이렇게 좋은 집도 달에 백 얼마 밖에 하지 않는 다며 이왕 온 김에 이런 곳도 있으니 한 번 보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뜻은 알겠지만, 타지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의 집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고민이 들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려고? 이 사람 혹시 나쁜 사람이면...? 하면서 온갖 좋지 않은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어컨 바람이 빵빵한 차 안에서 나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말마따나 넓은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고민했다. 입구에서 경비와 인사를 하고, 선생님 집까지 2분 정도 차를 타고 더 들어갔다.



 애초에 거절을 잘했어야 하지만 운전대를 휙휙 돌려 이미 들어간 입구인데, 나는 그저 조수석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발 착한 사람이어라 하고 기도할 뿐이었다. 긴장을 하니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집 안 구경을 한 번 해보라고 문을 열었다. 깨끗한 집이었다. 정말 멋있고, 드라마에서 나올 만한 그런 집이었다. 인테리어도 예쁘고 심지어 마당에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안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나는 경직된 채로 어색한 연기를 시작했다. 모든 것에 오버를 하고, 멋지네요! 우와 이런 곳에 살면 정말 좋겠어요! 청소도 잘하시나 봐요! (제발 제발! 우리 얼른 나가요!)



 선생님은 나의 칭찬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물고기 밥을 가지고 오셨다. 오신 김에 얘네 밥이나 한 번 주고 가시라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온몸이 굳어진 채로 삐그덕 거리며 선생님네 물고기들에게 밥을 뿌려주었다. 에어컨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땀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신 선생님이 이제 갈까요? 하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이런 멋진 집에 사는데 자랑할 사람이 많이 없었던 것이다. 나를 무섭고 위협할 목적이 아닌 정말로 자랑 목적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다. 그 이후에 온천 마을에서 우리는 잘 놀았고, 잘 먹었고, 집까지 잘 데려다주셨고 우리는 그날 이후로도 평소와 같이 수업이 끝나면 조잘조잘 이야기를 잘했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타지에서는 더 조심했어야 한다. 정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선생님의 순진함이 상대에겐 겁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일 이후로 나는 남자친구에게 엄청 혼나고, 대만 언니에게도 한소리를 들었다. 원래 해외에서 자국 사람들 믿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건 대만이나 한국이나 비슷한가 보다.



 선생님의 의도와 다르게 혼자 겁을 먹고 나쁜 상상을 하는 내 자신이 혹시 결례가 되는 행동인가 생각을 해보았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단호한 거절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 또한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걸 몰랐던 나는 이 날을 통해 상황 파악은 빠르게, 거절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새로운 다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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