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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19. 2024

대만언니와 야시장 데이트

그리고 새로운 친구


 평소처럼 외출 후 땀을 한바탕 흘린 날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재빠르게 샤워를 하고, 마지막에 들린 카페에서 사 온 음료를 마시며 에어컨을 쐬고 있었다. 저번에 친해진 대만 언니와는 어학원 수업이 딱 하루, 월요일에만 겹쳐서 다른 요일에는 볼 일이 많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도 월요일이 아닌 어느 주중 평일이었다. 언니는 오후 늦게 나에게 디엠을 보내왔다. 혹시 오늘 저녁에 뭐 해? 라면서. 나는 이미 샤워를 다 마치고 화장도 다 지워 버린 채 그저 밤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니 야시장을 가봤냐며, 오늘 저녁 6시에 함께 가자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사실 갑작스럽게 생기는 약속들을 기피하는 편이었던 내가, 화장을 다시 하고 방금 감은 머리를 다시 드라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반가운 연락이었다.



 치앙마이에는 야시장이 여러 개가 있다. 대표적으로 선데이 마켓, 세러데이 마켓, 치앙마이 대학교 야시장이 있는데 선데이 마켓이나 세러데이 마켓은 이름처럼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열리는 시장이다. 반면에 치앙마이 대학교 야시장은 매일 오픈한다. 대신에 위에 두 시장들과는 비교할 규모가 아니라 야시장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언니와 치앙마이 대학교 야시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방금 화장을 지운 맨 얼굴에 처음부터 다시 화장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언니가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괜찮으니 천천히 오라고 말한 뒤 바로 옆에 있는 소품샵에서 홀로 구경을 했다. 주로 여성용 아이템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브랜드로 알려진 이미스 모자가 걸려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가격을 훑었더니 8000원밖에 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짝퉁이었다. 그러니 이런 시장에 걸려있는 브랜드 옷들은 대부분 티가 나는 짭이니 조심하길 바란다. 또한 옷들은 왜 이렇게 사이즈가 작은지 모르겠다. 여성용 옷들이 거의 아동용 사이즈였다. 여기 사람들은 다 이렇게 말랐나 생각해 보니 정말 마른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긴 하다. 나는 한쪽 벽면에 빼곡하게 걸려있는 핸드폰 케이스로 눈을 돌렸다. 핸드폰 기종 별로 구역을 나누어 놔서 내 폰에 맞는 사이즈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거라도 맞는 게 있어서. 나는 약 4000원짜리 귀여운 케이스를 이곳에서 대만언니를 기다리며 구매했고, 이 케이스는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내 폰에 건강하게 입혀져 있다.



 언니를 만나서 우리는 음식이 몰려있는 거리로 향했다. 이곳에 몇 번 와본 언니는 골목 사이사이를 앞서 갔다. 언니를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니 기름진 향이 가까워져 갔다. 언니는 이거 알아? 이거 먹어봤어? 하면서 다양한 음식들을 소개해줬다. 우리가 제일 먼저 사 먹은 건 전병처럼 생긴 디저트였다. 구운 밀가루 반죽 위에 작은 계란과 토핑을 올려 돌돌 말아 주는 것이었다. 언니는 대만에도 이거랑 똑같은 게 있다며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한 번만 들어서는 절대 기억을 못 하는 그런 이름이었다. 언니가 사준 전병은 딱 상상하는 그런 맛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주스 집으로 향했다. 돌아다니면서 마실 음료를 샀다. 나는 치앙마이에서 새로 알게 된 용안 주스를 구입했다. 치앙마이 도착 초반, 나는 주말 오전에 홀로 코코넛 마켓을 간 적이 있었다. 아까 설명한 주말 야시장처럼, 주말에만 열리는 오전 시장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게 징자이 마켓과 코코넛 마켓이다. 그날도 쪄질 듯한 더위에 시원한 음료가 필요했다. 주스가게에는 황토색 항아리들이 즐비했고, 겉에 생소한 열매 사진들이 붙여져 있었다. 뭐가 뭔지 전혀 알 리가 없으니 사장님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을 하나 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웃으며 ‘롱간’을 추천해 주었다. 플라스틱 컵에 얼음을 가득 담고, ‘롱간’이라고 써져 있는 항아리에서 두 국자를 퍼 넣어주었다. 마치 보리차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낯선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이럴 수가. 달짝지근하면서도 너무 달지도 않고, 약간 고소한 맛도 나면서 정말로 보리차마냥 꿀떡꿀떡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너무 단 음료는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는데 롱간 주스는 나의 갈증을 삽시간에 해결해 주었다. 그 뒤로 ‘롱간’이라고 써져 있는 주스를 보면 후다닥 앞으로 달려가 그 황홀한 맛을 느끼곤 한다.


 언니와 먹고 싶은 음식들을 여러 개 구매해서 식당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식당에서 메인 음식 한 개를 시키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사 온 음식들을 먹자고 했다. 음식 부스 양 옆으로는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았다. 우리는 어디로 들어갈까 어물쩡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내가 듣는 어학원 반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있다. 중국, 일본, 한국, 캐나다, 미국, 아일랜드, 대만 등 어느 나라가 더 적고 많고도 없었다. 왜냐면 같은 국적 사람들이 두 명 이상은 없었다. 그중에 국적을 예상할 수 없는 친구가 있었다. 하얗게 탈색한 긴 머리에, 손톱도 화려하고 뾰족했다. 생김새는 나와 같은 동아시아는 아닌 것 같고, 스타일은 힙걸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실제 성격은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말갛게 웃으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귀여운 친구라고 생각했다. 말도 제대로 섞어보지 않은 친구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똔똔이다. 코끼리 바지를 사러 왔다는 똔똔에게 우리는 할 일이 없으면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똔똔과, 대만 언니와 그리고 한국인인 나. 우리는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채 한 태국식당 테이블에 앉았다. 셋 다 태국어를 공부 중이지만 아무래도 영어가 편했다. 아직 태국어로 숫자조차도 세지 못하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아무래도 별로 친하지 않았던 똔똔에게 나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내 이름은 효니야. 나는 여기에 놀러 왔어. 아마 9월 말쯤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아. 그때까지 잘 지내보자. 다음으로는 대만 언니의 인사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똔똔도 수줍게 인사했다. 이름은 똔똔. 미얀마에서 왔어. 나는 18살이야. 태국으로 유학 왔어.



 많은 국가를 여행해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에 비해 꽤 많이 다녔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여행지속에 많은 친구들을 만나봤지만 미얀마는 처음이었다. 똔똔과 대화해 보니 미얀마어와 한국어중에 비슷한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엄마를 미얀마에서는 엠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에 대해 검색해 보니 한국과 관련이 꽤 많은 나라였다. 미얀마 어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마치 비눗방울처럼 생긴 게 동글동글 귀여웠다. 우리 셋은 그 자리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치앙마이에 온 이유, 치앙마이에서 앞으로 어떻게 지낼 예정인지부터, 좋은 숙소를 알고 있냐, 남자친구가 있냐, 한국인 남자는 어떤지, 나 지금 연락하는 남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냐는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그러다 문득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왜 말이 잘 들리는지. 어버버 거리던 내가 야야 걔는 좀 아닌 것 같다, 오 마이 갓, 내 남자친구도 똑같아! 저번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하며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특별한 상황에서 나는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외로움이 짙어지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별에 별 수를 쓰는 동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 같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영어 실력으로도 대화가 되고, 함께 웃고, 다음 약속을 기약했다. 우리는 그날 식당 마감시간 때까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새로 생긴 나의 첫 미얀마 친구와 다정한 대만 언니와의 데이트.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세 명의 아시아 여자들, 하지만 한국인 친구들이랑 나누는 대화와 별반 차이가 없던 그저 또래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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