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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16. 2024

치앙마이의 꽃시장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이유



 나는 플로리스트였다. 아직 남아있는 직업병의 일환으로 곳곳에 피어난 꽃과 식물을 보며 반가워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치앙마이에도 꽃시장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다행히 우리나라 고속터미널이나 양재꽃시장처럼 치앙마이에도 꽃만 판매하는 꽃시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이곳도 일반인들이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었다. (종종 타국가는 상인만 입장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 위치를 보니 와로롯 시장 바로 옆이었다.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니 안 갈 이유가 없지. 나는 다음날 바로 치앙마이의 꽃시장으로 향했다.



 볼트로 오토바이 드라이버를 불렀다. 시장 초입에는 사람들이나 차가 많아 바글바글 거리니 오토바이가 제격이었다. 뜨거운 태양아래 따뜻한 바람을 타고 꽃시장 입구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입구부터 자연스레 인상이 쓰였다.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질퍽한 물이 쪼리 안으로 들어왔다. 게다가 꽃시장 건너편에는 누런색의 핑강이 흐르고 있어 물 비린 향이 도로에 가득했다. 꽃시장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작았고, 다라이 안에 길쭉한 꽃들이 거침없이 꽂혀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쾌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연스레 흐르는 땀이 그 순간을 더했으리라. 도로 옆에 바로 위치한 덕분에 매캐한 매연도 덤으로 즐길 수 있었다. 바닥은 질퍽, 몸은 끈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인도길 덕에 절뚝이며 나는 꽃을 구경했다.



 더운 나라에서 자라는 꽃들이라 고터에서 봐왔던 생화들과 태생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대부분 대가 굵직하여 몽둥이로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뭐가 그렇게 맛있었길래 이렇게 자랐는지 비법을 물어보고 싶었다. 특히 원색의 짙은 컬러들이 많았다.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어필하는 컬러들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지경이었다. 불교국이다 보니 온갖 종류의 국화들이 즐비했지만, 나는 국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화병에 둘 정도로만 필요하니 묶음이 작은 꽃들이 필요했다. 그러다 멀대 같은 생화들 사이에서 작고 아담하게 발광 중인 꽃이 있었다. 바로 쿠루쿠마다. 빨주노초파남보 강렬하게 자기주장 중인 꽃들 사이에 하얗게 빛나는 쿠루쿠마를 보니 눈이 편안해졌다. 나는 바로 직원에게 한 단에 얼마냐고 물었다. “삼 씹 밧” 네...? 천 원이요?


쿠루쿠마



 나는 우리나라 화훼 업계를 잘 알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꽃집들이 힘든 상황이며, 각종 시즌만 되면 우후죽순으로 올라가는 가격 덕분에 꽃다발을 팔 때 죄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꽃값이 많이 올라서 그 가격이면 미니 사이즈인데 괜찮으세요...?” 그러면 돌아오는 상황은 세 가지다.    

1. 네??? 다음에 다시 올게요... (이해해요 ㅎㅎ)

2. 괜찮아요. 요즘 꽃값이 많이 올랐다는 기사 봤어요. 힘드시죠. (완전 천사. 괜히 사장님 몰래 한 두 송이 더 넣어주고 싶음)

3. 아가씨 내가 고터도 많이 가보고 꽃도 많이 사봤어!! 뻔히 다 아는데 무슨!! (^^;;;)

이럴 때마다 할 말은 많지만 꾹 참고 넘긴 순간들이 많았다.



 한 송이가 아닌 한 단 가격이 천 원, 그래 오늘 환율에 의거하여 천 백 원이라면 3만 원에도 대형 다발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심히 뒤에 쌀 가마니들처럼 쌓여있는 서양난 한 덩어리도 물어봤다. 이건 좀 비싸겠지 싶어서. 돌아오는 대답은 “삼 씹 밧” 이였다. 나는 한국에서는 감히 살 수도 없었던 서양난 한 묶음과 쿠루쿠마를 봉투에 덜렁덜렁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꽃시장 어디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가던 화병 두 개를 골라왔는데 이 안에 천 원짜리 꽃들을 조심히 다듬어 소중하게 넣어주었다. 단지 화병 두 개가 생긴 것뿐인데 숙소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훨씬 화사하며 아늑하고 조금 더 내 공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아침 화병의 물을 갈아주고, 꽃대를 새로 잘라주었다. 꽃이 시들어가면 다시 꽃시장으로 향해 새꽃을 꽂아놨다. 새로 생긴 나의 치앙마이 루틴이다. 질퍽한 인도, 매캐한 매연, 핑강의 물 비린내, 원색의 강렬한 꽃들, 생화를 비닐에 덜렁 담아주는 무심함. 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치앙마이의 상냥한 꽃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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