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의 첫 친구
치앙마이에서 친구가 생겼다. 나의 유일한 친구인 대만 언니는 웃는 게 예쁜 사람이다. 우리의 첫 데이트는 미술관이었다. 친화력이 좋은 언니는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가 있는데 함께 가자며 디엠을 보냈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언니는 디지털 노마드로 자국에서 뜨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여러 수강생을 모집하여 인터넷으로 강의를 한다. 또 대만 내에 몇 개의 사이트에 본인이 디자인 한 제품을 판매하며 치앙마이에서 생활하고 있다.
언니와의 소통 방법은 영어다. 어느 정도 영어와 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니는 나의 개똥 같은 영어도 천천히 들어준다. 혹시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있다면 파파고를 틀어 대화한다. 언니의 영어 이름은 클레어. 하지만 왠지 클레어에겐 언니라고 부르고 싶었다. 첫 만남에 나는 “캔 아이 콜 유 언니?”라고 물었고, 클레어는 “오브 콜스“라고 했다. 나는 “두유 노 언니 민스? “라고 물었고, 클레어는 한국의 드라마를 몇 번 봐서 언니의 뜻을 안다고 했다. 그리하여 클레어는 나에게 대만 언니가 되었다.
내가 치앙마이에 지내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언니는 다음번에는 여기 가자, 여기도 가봤니? 하며 메시지를 보내온다. 두 번째 만남은 요가 원데이 클래스였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이 있는데 언니의 남자친구는 함께 가주지 않았고, 첫 데이트 때 내가 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함께 예약했다. 요가 원데이 클래스를 위해 왓슨스에서 요가 매트까지 구입했다. 새로 산 매트를 어깨에 짊어지고 예약한 수업 장소로 도착했는데, 웅장하고 강렬한 기운이 맴도는 홀이었다. 양 옆의 문은 통창에 나뭇가지로 감싸져 있어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멋스러운 공간이었다.
요가 선생님은 대개 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가끔 영어를 사용하는 것 같긴 한데 수업 중엔 동작을 따라 하기에도 벅차 영어인지 태국어인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언니와 나 둘 다 요가 초보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요가 학원을 세 달 결제를 한 적이 있는데 출석한 적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다. 그래서 나 또한 초보라고 지칭하기로 했다. 선생님의 수업 난이도는 우리에게는 꽤 어려웠으며 가끔은 우리 둘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세를 하고 있기도 했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조용하고 장엄한 홀 안에서 혼자 풉 해버렸고, 그다음부터는 웃음을 참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어 땀이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용한 공간은 왜 웃긴 걸까? 그날의 땀범벅은 운동 때문이 아닌 웃음 때문이었다.
험난했던 수업이 끝난 후 우리는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사 먹고, 근처에 있는 주말 마켓으로 향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쇼핑을 한 후 우리는 더위에 지쳐 ”이제 집에 갈까…? “ 하고 서로 볼트를 불러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 언니한테 다이렉트 메시지가 왔다.
”효니, 너 오늘 불편한 게 있었니?, 만약 그런 상황이 있으면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줘.”
나는 이 메시지를 받고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리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혹시 마켓에서 내 표정이 안 좋았나? 더워서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그거 때문에 언니가 오해를 했나? 혼자서 별에 별 생각을 다 했다. 그리곤 언니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불편하게 한 게 있어? 나는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오해하게 만든 게 있다면 미안해 “
이내 당황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말이 아니야. 사실 나 감기 걸린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온 후 지금까지 열이 나서 잠만 잤어. 너도 몸이 아프지 않을까 해서 말한 거야. 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너는 여기에 혼자 있잖아.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줘. 우리가 너를 돌봐줄거야. “
그날 새벽 배꼽 저 아래에서부터 무언가 따뜻하고 간지러운 느낌이 끓어올랐다. 언니의 ‘we will take care of you’ 말에 나는 생각했다. 치앙마이 오기 너무 잘한 것 같다고, 그래서 언니를 만나 너무 다행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다음 날 살짝 저려오는 다리 빼고는 몹시 건강했다. 다음 수업에서 만난 언니는 흐르는 콧물을 계속해서 막고 있었고, 책상에는 휴지가 가득했다. 코에 휴지를 끼고 있는 언니를 살짝 놀리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드디어 함께 웃음을 나눌 친구가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