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잔향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진한 향은 오래 맡기 어려우니까. 나에게는 은은한 풀꽃의 향이 난다. 그 시절 우리가 함께 갔던 예천을 기억해? 그 시합은 비가 정말 많이 왔었는데. 그때 우리 다 같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잖아. 맞아 그때 그랬었지. 우리가 아침밥을 먹었던 식당은? 음식들이 정말 맛있었는데. 미끄러져서 먹으면 안 된다는 미역국을 굳이 굳이 먹고는 우리는 또 단상 위에 올랐지. 그곳에서 키우던 강아지 말이야. 그래. 대명이, 대명이는 잘 살고 있으려나? 너는 여전히 예천을 가면 우리가 함께 했던 그때의 향이 나니? 청주에 갔을 땐? 광주는?
나는 이곳에서 여전히 그때의 향기를 맡아. 후덥지근하기도 하고 때론 선선하기도 해. 시합 5분 전을 준비하느라 다 같이 분주하기도 하고, 시합이 다 끝나고 나서는 울고 웃으며, 다음 시합 때 보자는 안부 인사를 한 뒤 떠나는 모습의 향이. 하지만 내게 다음 시합이란 없었고, 그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잖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내가 밉지는 않니? 난 가끔 너의 잔상을 봐. 그리고 그때의 내가 잔상으로 남아있어. 어떻게 보면 그때를 기억하려 애쓰는 것일지도 몰라. 그렇게 소중했던 기억들을.
우리가 함께 했던 시합장의 여름냄새가, 그 넓은 양궁장의 풀냄새가 잔향으로 남았어. 너에게는 은은한 아카시아 꽃 향기가 났던 것 같아. 네가 시합이 시작하기 전에 뿌리고 온 그 향은 시합이 끝날 때쯤 뜨거운 여름의 냄새와 땀 냄새가 조금 섞여 여름의 향기를 만들어 냈지. 나의 여름은 그랬어. 그리고 그때의 여름을 사무치게 그리워해. 잔향과 잔향이 모여 내게 향수가 되었어. 그 시합장에는 아직 나의 향기가 남아있어? 나의 진했던 향도 이제는 잔향으로 남았을까? 상관없어. 그렇게 도망치는 듯 뛰쳐나온 그곳에 나의 향기가 남았든 남지 않았든. 하지만 우리가 함께한 9년, 네 기억 속의 나는 향기 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은은한 풀꽃의 향기가 났으면 좋겠어. 네가 어디서든 함께라 느낄 수 있게. 언제까지나 맡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