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성과 휴머노이드
섣달 그믐날 밤이면 중국 CCTV는 중국춘절연환완회(春节联欢晚会, 이를 줄여서 “춘완”이라고 한다)라는 종합 버라이어티 쇼를 방송한다.
춘완의 원형은 1956년도 당시 중앙신문 기록영화제작창에서 만든 "춘절대연환"(春节大联欢)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현대적 의미의 춘완은 1979년도에 방송된 "새봄맞이문예완회"(迎新春文艺晚会)라는 연예 프로그램이었다. 1983년에 이르러서야 중앙방송국은 섣달그믐 저녁에 처음으로 현장 생중계 형식으로 제1회 춘절연환완회를 방송하는데 이때부터 지금과 같은 포맷의 춘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로 춘완은 중국의 춘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중국 당산과 사천의 대지진을 배경을 한 영화인 당산대지진에도 주인공이 어린 시절 춘절을 보내는 집 거실에는 만두를 찌는 증기 뒤로 TV에는 춘완이 방송되고 있었다.
혼자 도시에서 춘완이 방송되는 TV를 조명삼아 보내는 외로운 춘절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면서 보는 시끌벅적한 춘완도 모두 중국인들의 춘절을 대표하는 정서다.
198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어디 있었을 것이며 영화관도 지금같이 접근이 용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을 시절에 춘완은 온 중국 국민이 기다리는 1년에 한 번 있는 볼거리였다.
춘완의 내용은 모든 연예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이 다 녹아 있다.
짤막한 연극, 노래, 무용, 특히 우리의 과거의 만담에 해당하는 상성(相声)이라는 두 사람이 나와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만담도 특히 중국 사람들에게는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이다.
춘완을 통해 쟈오번샨(赵本山)이라는 춘완의 상징 같은 오래된 연예인도 알게 되었고, 꿔더강(郭德纲)이라는 상성 배우도 알게 되었다. 동북 사투리를 간드러지게 표현하는 샤오션양(小沈阳)이라는 배우는 춘완을 통해서 단번에 전국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춘완은 단순한 종합 연예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 세계에 중국이 보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딥식이 초저가 고성능 AI로 세계를 놀라게 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방송된 2025년 춘완에는 휴머노이드들이 등장하여 사람들과 함께 춤을 주는 모습이 방송을 탔다.
그런데 그 로봇들의 움직임이 너무도 정교하고 섬세하여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 공연도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장이모 감독이 연출을 했다고 하는데 장이모 감독은 본업인 영화뿐만이 아니라 2008년 북경 올림픽 개막식, 항주의 서호를 배경으로 한 인상서호를 필두로 중국의 명승고적이나 자연을 무대로 펼쳐지는 일련의 공연들로 중국에서는 이름이 드높다.
이번에는 휴머노이드와 인간이 함께 군무를 추는 장면을 연출해 내면서 중국의 인문학적인 정서와 과학 발전의 성과를 결합하여 한 차원 높은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다시 한번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주었다.
중국 상성의 일인자인 꿔더강이 올해 5월에 우리나라에 공연을 하러 온다고 한다.
꿔더강의 중국식 유머를 한글로 자막으로 어떤 기술적인 조치나 번역을 통해 담아낼지 궁금하다.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한국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사로 통역이 가능한 휴머노이드가 대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흔히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 폐쇄적인 국가 통치구조,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아이들은 창의성이 부족하여 발전과 도약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아니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딥식이나 춘완의 휴머노이드를 보고 있자면 과연 이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메이드인 차이나가, 중국인들이, 중국이 몰려오고 있다.
중국의 상성을 보며 웃어낼 수 있고,
중국의 휴머노이드와 함께 춤도 출 수 있어야 한다.
포용력의 크기는 자신감의 깊이와 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