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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읽는 변호사

춘절, 그 설렘의 시간 2

by 중국 읽는 변호사

춘절은 아니지만 북경에 있던 어느 해의 12월 31일,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무료한 기분에 이 시간에 경산공원에 한번 올라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자금성 주변에는 성에 침입하는 자들로부터 성을 지키기 위해서 인공적으로 판 호수가 있는데 그때 나온 흙을 쌓아서 만든 자금성의 북쪽에 있는 산이 경산이다.

천안문 광장 남단인 정양문에서 시작해서 자금성을 관통하고 나면 마지막까지 남은 힘을 짜내 올라가는 곳이 경산공원 정상인데 지친 걸음과 가쁜 호흡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발아래 펼쳐지는 자금성의 위용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된다.


낮에는 수도 없이 가본 곳이었지만 밤에 갈 일은 없었는데 그날 저녁에는 충동적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때 살던 집 앞에는 바로 경산공원 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밤에는 조명이 많지 않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겨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만 희미한 불빛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정상에 다다라 정자에 앉았다. 평소에는 밀려든 인파로 자리차지 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밤에 바라본 자금성은 성곽 테두리 부분만 조명이 들어와서 윤곽만 보이고, 그 안은 깜깜한 하나의 덩어리로 보였다. 그래도 그 모습이 참 장관이었다.

나는 자금성과 일대일로 마주 앉았다. 그날 밤에는 그 정자에 나 혼자 밖에 없었다.

12월 31일인데도 그다지 춥지도 않았고 짧지 않은 시간을 정자에 앉아서 자금성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시절에 자금성을 지었던 사람들도 언젠가 한국 사람이 저 위에 혼자 앉아 자기를 내려다볼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경에서 춘절의 백미는 미아오후이(庙会)라는 행사다. 원래는 미아오라는 말은 절, 사찰이라는 말이니 절 근처에는 사람들이 모이니 그들을 위한 장터가 섰는데 거기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미아오후이에서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토네이도 감자튀김도 인기를 끌었고,

양꼬치는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이다.

사실 별다른 대단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아오후이는 중국 북경에서 춘절의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북경을 바라보면 왼쪽은 하이디엔취(海淀区), 오른쪽이 차오양취(朝阳区) 두 개의 큰 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차오양취는 금융, 경제의 중심지로 외국인들이 많아서

외국인들 장기자랑 같은 행사도 미아오후이의 단골 메뉴였다.

미아오후이를 가면 중국 사람들이 참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한 손에는 양꼬치를 들고 한쪽 손에는 바람개비를 들고, 내가 보기에는 가짜가 아니면 그다지 가치가 없어 보이는 미술 작품의 경매도 진지하게 경청하고 그 속의 사람들이 그렇게 표정이 밝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 속에서 부대끼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북경에 있을 때는 나도 중국 사람들과 같이 춘절이 되면 미아오후이를 다녀왔다.


춘절의 미아오후이는 이제는 아련한 추억 속의 공간과 시간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분명해 지는 생각은

나는 중국은 지득하는 나라가 아니고 체득하는 나라라는 점이다.

책을 보거나 말만 가지고 중국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중국을 직접 내 발로 디뎌 봐야 진정한 중국을 알 수 있게 되고 발로 느꼈던 감각이 진정한 내 것으로 체화된다.

최근에 중국 가는 비자가 면제되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중국 방문길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중국을 직접 체험하고 체득할 기회가 많아지면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오해나 편견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해마다 춘절이 되면 미아오후이에 가득 찬 사람들의 순박하기 그지없는 행복한 미소와, 눈앞이 뿌옇게 흩날리던 양꼬치 굽던 연기, 아빠 목에 목마 탄 아이 손에 쥐어져 있던 바람개비 속을 걷넌 나의 모습이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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