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Seek에 대한 성찰
설날을 앞두고 딥식(DeepSeek)이라는 중국의 생성형 AI어플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DeepSeek은 중국말로는 심도구색(深度求索)이라고 하니 깊이 있게 찾는다는 의미이다.
딥식의 부상으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AI관련 글로벌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사건의 전말은 비교적 간단하다.
85년 생 수학천재 량원펑(梁文锋)이 세운 중국의 AI회사에서 만들어 낸 생성형 AI어플이 기존의 미국의 유수한 AI어플을 밀어냈다는 것이다.
딥식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등 여러 가지 견제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저렴한 하드웨어를 이용해 한층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성능이 미국의 그것을 앞선다고 했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미국의 온갖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전제에 오류는 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 중국의 실사구시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항상 1등을 강조한다.
압도적인 경쟁력으로 학창 시절에는 학급에서, 국가적으로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남들보다 나은 대학에 가거나 국부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지배적 명제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중국은 실용적인 것을 강조한다. 굳이 1등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JD닷컴, 알리바바 같은 이미 전국적으로 시장을 제패한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존재함에도 핀뚸뚸(拼多多)라는 기업은 3,4선 도시의 저가시장을 공략했던 역량으로 이제는 테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즉, 중국은 후발주자로서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지금도 중국에 가면 예전보다는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이른바 짝퉁 가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세계의 유명한 브랜드들을 모방한 제품들이지만 그 품질들이 그렇게 조악하지만은 않다.
즉, 중국은 1등을 해서 남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대로 충분한 good enough 제품을 통해 14억이나 되는 국민들을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으로 입히고 먹여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한 나라다.
이것이 그들이 추구해 온 등 따습고 배부른 온포(温饱) 사회이고 중국적 특색의 복지사회인 소강(小康) 사회이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대동(大同)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단이나 과정보다는 결과나 목표지향적인 삶의 태도가 배어 있다.
둘째, 중국적 면자에 대한 재해석이다.
흔히들 중국 사람들은 면자(面子)라고 하여 체면을 중시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절대로 금기시된다.
그랬다가는 그 사람하고는 영원히 척을 지게 되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 사람의 체면은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한국 속담에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네 양반은 설사 내가 추워 죽는 지경이 된다고 해도 뒤에서 슬며시 화로에 손을 내미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한국의 체면이 중국의 면자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체면은 내 이해관계에는 바로 자리를 양보한다.
너무도 당당하게 화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몸을 들이 내미는 것이 중국 사람이다.
미국에 의해 상당기간 지속되어 온 제재와 공개적인 비난에 체면으로만 따지자면 중국은 적지 않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지만 뒤로는 빛나는 칼날을 칼집에 숨기고 미국을 앞지르는 기술을 공개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셋째, 선부론을 넘어 공동부유를 추구하는 중국 국가대표 기업가들의 굴기의 시작이다.
시진핑 주석이 공동부유를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이제 등소평이 주장했던 선부론, 흑묘백묘론의 실용주의를 폐기한 것이 아니냐는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중국은 원래부터가 사회주의 국가다.
그 궁극적인 지향점이 평등인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부유는 선부론의 최종 종착점 내지 목적지이지 선부론의 폐기나 포기가 아니다.
우리는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담론이 중국에서는 효율이냐 공평이냐라는 논쟁으로 계속되고 있다.
케이크를 먼저 더 크게 만드느냐 아니면 이제 충분히 커졌으니 이를 이제 나눌 것이냐의 토론도 그러한 맥락이다.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빈부격차, 양극화 문제는 사회주의 국가뿐만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자본주의 국가도 당면한 문제이다.
딥식이 언론의 전면에 부상한 이후에 딥식의 창업자 량원펑(梁文锋)이 리창 총리가 주재한 중앙의 회의에 참석했던 동영상도 SNS를 통해 널리 전파되었다.
선부론을 넘어 공동부유를 추구하는 시대의 중국 국가대표 기업가들의 굴기가 시작된 것이다.
넷째, 우리의 무지와 편견을 성찰해야 한다.
AI 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지를 알 지는 못하지만 그런 사업에는 막대한 투자나 자원의 투입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 막연히 맹신했다.
AI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되어야 하는 엔비디아의 고사양의 HBO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고 그 회사에 대한 납품 역량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미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경쟁의 바다에서 파도의 방향이 바뀌면 우리는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옷이 젖지 않을지만 노심초사했지 그 바다를 벗어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만 바라보느라 튤립이나 풍차만 있었던게 아니고 ASML이라는 전 세계 반도체 산업 배후의 실력자를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공부에는 쏟는 힘이 부족했다.
시중에 넘쳐나는 미중 패권론, 피크 차이나 같은 논쟁들도 미국과 중국이 누가 세상을 더 지배할 것인지에만 몰두했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패권국가가 될 수 있을까
그게 힘들다면 우리는 어떻게 확고한 3위 국가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의 수립에는 취약했다.
2025년 뱀의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 벽두부터 불어닥친 딥식의 돌풍이 우리에게 천둥번개를 동반한 태풍이 될지, 꽃향기 잔뜩 머금은 봄바람이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하기 나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딥식의 등장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에 "경각심"을 가져다 줄 것으로 전망했다.
딥식의 등장과 미국의 경각심은 우리에게는 "경종"을 울리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돌풍을 우리식으로 "심도구색"하려는 노력이 절박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