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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읽는 변호사

춘절, 그 설렘의 시간 1

by 중국 읽는 변호사


중국에서 춘절은 음력설과 그날을 전후로 이어지는 며칠의 연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춘절이 되면 우리나라의 설날 특별 운송기간과 같은 춘운(春运)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중국의 각지로 실어 나른다. 그 과정에서 연인원 수십억의 이동이 발생한다.

2025년 춘운도 1월 14일부터 2월 22일까지 장장 40일의 기간에 이른다고 한다.


2006년 2월에 처음 어학연수를 위해 북경에 갔다. 그 무렵이 아마 춘절을 전후한 어느 시점이었던 모양이다. 기숙사 창문 저 너머로 보이는 지평선에서 매일 간간이 펑펑하는 대포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얼마나 준비 없이 중국 어학연수를 왔길래 중국에 전쟁이 난 것도 미처 모르고 왔나 하고 심하게 자책을 했었다.


폭죽은 중국에서 춘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였다.

춘절 기간 동안 폭죽을 터뜨리는데 춘절을 앞두고 1-2 주 전에 동네에 폭죽을 공식적으로 판매하는 간이 매장이 설치되었다.

콩알탄 같은 것에서부터 사과상자 만한 것에 이르기까지 폭죽의 종류도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폭죽을 집중적으로 터뜨리는 날이 있는데 섣달 그믐날에서 정월 초하루로 넘어가는 설날을 맞이하는 순간과 정월 초닷새를 중국에서는 파오(破五)라고 하여 새해가 되면 5일이 되기 전까지는 집안 문도 열지 않고 외출도 안 하고 쓰레기도 밖으로 내다 버리지 않는데 새해를 맞고 5일 째가 되어 드디어 대문으로 열고 바깥출입을 하는 날, 그리고 마지막이 정월 대보름이다.

정월 대보름의 폭죽을 끝으로 한 해의 춘절 행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북경대학교 석사 2년 차였던 2008년에는 중국 친구 집에서 설날을 보냈다.

그 친구는 지금 생각해 보면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자제여서 집이 구어마오(国贸)라고 하는 북경의 상업 중심지가 훤히 내다 보이는 천단공원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파트 계단의 창으로 보면 구어마오 지역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한눈에 펼쳐졌고 그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자정을 넘어서자 폭죽놀이가 시작되었다. 북경의 하늘이 불빛과 먼지로 가득 찼고 폭죽의 굉음은 내가 기숙사 방에서 들었던 지평선 넘어 어느 곳에서 들려오던 바로 그 소리였다.


북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장안대가의 양쪽에는 은행, 국유기업들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본사가 늘어서 있는데 그때만 해도 누가 더 화려하고 멋진 폭죽을 쏘아대는가가 기업의 기세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설날의 불꽃놀이나 폭죽의 위용은 가히 중국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해 정월대보름에 불꽃놀이를 하다가 불씨가 막 완공되어 가는 CCTV건물에 옮겨 붙어 건물이 모두 불타버리는 사고가 있은 후에 불꽃놀이는 중국에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엄격하게 제한된 장소에서만 허용되었고 장안대가의 건물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펼쳐지던 불꽃쇼는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해에는 동네 입구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보러 나갔다. 어느 정도의 불꽃을 쓰는가가 그 사람의 재력을 과시하는 것인데 어느 아저씨가 사과상자 크기의 불꽃에 불을 붙이고 주변에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는 마오타이를 한잔씩 따라 주고 중화 담배를 한 가치씩 나누어 주었다.

그때는 나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라 한 잔 얻어먹고 한 대 나누어 피었다.

술을 잘 먹지 못해 독한 술 한잔에 어질어질한 상태였지만 나도 중국 이웃들과 어울려 춘절을 맞이한다는 설레임이 있었다. 단순히 중국말을 할 줄 알고 중국법을 조금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그들과 동화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어 기뻤다.

까만 밤하늘의 불꽃이 주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알코올이 준 취기, 사람의 환호성 그 날의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중국에 관한 가장 강인한 이미지로 나에게 남아 있다.


마오타이술에 중화 담배 1978년 개혁개방을 하면서 외쳤던 선부론을 몸소 성공해 낸 것 같던 우리 동네 폭죽 아저씨가 2025년 공동부유의 중국의 춘절에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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