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불신을 구별하자
절친한 지인 중에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중국 측 파트너도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과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여 애니메이션을 CCTV에 방송할 계획을 추진했다. 각고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드디어 애니메이션 작품의 CCTV 방송이 예정된 날이었다.
일찍이 나는 지인과 함께 상해에서 항주의 파트너사로 출발했다.
오후 4시에 방송이 될 예정이었는데 그 감격적인 순간을 다 같이 맞이할 계획이었다.
항주까지 가는 차 안에서부터 파트너사의 회의실에 도착해서 커다란 TV를 세팅하고 그 앞에 자리를 잡고 방송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사법시험 볼 때 합격자 발표 직전의 긴장감을 20여 년 만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 중국인지라 실제로 방송이 되기 전까지는 안심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갑자기 한중간에 무슨 돌발 상황이라도 발생하거나 아니면 방송사의 최고 의사결정자가 사소한 일이라도 트집을 잡아 문제를 삼거나 하면 방송 직전에도 얼마든지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날의 방송 편성표를 보니 “외국 애니메이션”이라고만 되어 있고 지인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제목으로 특정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파트너사에서 확인을 구해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아마 문제가 없을 것이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라는 자신감 없는 애매모호한 말들 뿐이었다.
대회의실의 TV화면에 둘러앉았다. 드디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오후 4시가 되자 음악과 함께 나는 여러 번 봐서 익숙한 캐릭터들이, 우리나라 제작자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중국의 CCTV 화면에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리 모두 환호성을 내뱉었다.
중국 파트너사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짐짓 눈앞에 바라던 결과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불확실성에 익숙한 듯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 회의실을 떠났지만 입꼬리에 미소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순조롭게 방송은 마무리되었고 파트너사는 근처에 아주 근사한 식당에 만찬을 마련해 두었다.
흥분이 가라 않지 않아서인지 눈에 화려한 음식이 혀에는 무덤덤했다.
만찬을 마치고 상해로 돌아가 우리는 상해의 명문대학인 복단대 앞에 있는 한국 삼겹살 집에 둘이 자리를 했다. 한국 안주에 한국 소주, 이제야 긴장이 풀리고 행복이 밀려왔다.
지인의 얼굴에도 그때서야 화색이 돌았다.
중국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면 그들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묻는다.
우리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도 이건 뭐냐 저건 왜 저러냐 언제 되냐 등의 질문이 끊이지를 않는다.
메일이고 전화고 한국의 카톡 같은 위챗으로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를 않는다.
뭘 저런 걸 다 묻나, 나를 믿지 못하나 짜증이 날 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4시를 기다리면서 초조와 불안에 끊임없는 질문을 퍼부어 댔다.
그렇다고 우리가 파트너사나 중국을 불신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잘 모르니까, 잘하고 싶으니까 물어본 것이다. 몰라서 묻는 것이다. 몰라서 묻는 것은 잘못이 아닌 거다.
그러므로 중국 사람들하고 부대낄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의 마음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겠다는 상냥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들의 궁금증과 질문을 우리에 대한 불신으로 오해하여 기분 나빠하지 말고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구동존이(求同存异)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반복되는 질문도 서로가 다른 데서 나오는 것일 뿐이다.
중국이 말을 걸어올 때에 우리는 무지와 불신을 잘 구별하여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