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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한령은 잊어도 될 듯하다

by 중국 읽는 변호사

#1 중국 남부 리장의 소수 민족인 나시족이 사는 마을에 가서 그 동네 사람들 집에 초대를 받아 현지식 식사를 대접받는다. 석사 학위까지 대도시에서 마친 기특한 딸들과 함께 돼지를 먹일 여물을 베며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다. #2 10여 년 전 한국에서 히트 쳤던 영화의 주인공들이 뭉쳐 중국의 계림 여행에 나선다. 우리에게 익숙한 계림 외에 북제산, 남녕 시 등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관광지, 도시의 풍경이 중국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3 유명한 여성 개그맨이 시작한 여행 유튜브는 첫 목적지로 중국 하얼빈을 선택했다. 안중근 의사의 얼이 서려 있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국의 도시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꿔바로우와 만두 맛집을 찾아가는 것은 덤이다. #4 이번의 배경은 중국 충칭이다. 어느 도시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돈으로 그 고장 음식을 먹으며 생존하는 밥값은 한다는 프로인데 첫 임무는 충칭의 가장 높은 건물의 유리 지붕 청소이다. 한국의 임시정부가 있는 도시, 인구 3,200만의 중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라는 충칭의 화려한 모습들이 그대로 소개되었다.


위 내용들은 최근에 필자가 한국에서 접한 각종 중국에 관한 콘텐츠들이다. 중국의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한국의 안방에 소개되고 있다. 한중간의 문화 콘텐츠 교류에 있어서 우리는 이른바 한한령이라는 것 때문에 한국의 콘텐츠의 중국 진출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권도 바뀌고 뭔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간절히 기대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첫 번째 과제로 한한령의 해제를 첫 번째 과제로 손꼽는다. 한한령이 해제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수 만 명의 중국팬이 우리나라 아이돌에 열광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작진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중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중국이라는 철문의 빗장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의 교류가 일방적인 전파나 특정한 콘텐츠의 수출 같은 편협한 의미의 그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면 올해 말까지 한시적이기는 하나 중국이 취하고 있는 비자면제 정책을 통해 중국을 방문하기가 수월해진 것도 문화 인문교류의 대표적인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러할 진데 처음부터 중국 당국은 일관되게 한한령이라는 용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여 왔고, 앞으로 가사 한한령이라는 것이 해제된다고 해도 중국 당국의 책임 있는 인사가 나서서 공개적으로 “오늘 부로 한한령은 해제한다”라고 선언하며 그동안의 자신들의 실책에 대해서 한국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그림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에서 우리만 “한한령의 해제”라는 명제에 집착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바람직한 전략인지도 한 번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중국도 언제까지 우리나라 콘텐츠들을 막을 수 없다. 아무리 막는다고 해도 우리나라 아이돌을 배출한 기획사들이나 아이돌과 관련한 팝업 스토어들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관광성지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 한한령의 해제라는 정치적, 거시적 외교적 수사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의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K팝, 영화, 클래식 음악 등 문화의 각각의 영역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과 그 과정에서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은 중국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중국의 전통 음악을 레퍼토리로 유럽시장에 진출했다고 한다. 한중 양국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일방적인 전파가 아닌 상호 교류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문화대국의 면모를 만들어왔다. 앞으로도 한중간의 문화교류는 일방적인 전파와 수용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여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실천적인 문화 교류에 집중해 나가야 한다. 이제 한한령은 그만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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