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황희 그리고 우상호
2026년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강원도지사 후보에 등록한 한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은 "대통령이 보낸 사람"이다.
짧지만 강한 문장 한 줄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이 보낸 사람 "
이 슬로건의 주인공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강원도지사 후보다.
1962년 강원 철원에서 태어난 그는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서울 서대문갑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우상호 후보는 1980년대 학생운동 세대 출신으로, 오랫동안 국회에서 활동해 온 정치인이다. 기자 생활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5선 경력을 쌓았고, 민주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바 있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으로 일하다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원도지사 출마를 위해 수석직을 사퇴했다. 민주당은 그를 이번 지방선거 전국 1호 공천자로 선정했다.
슬로건은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철원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우상호 후보를 "(이재명) 대통령이 보낸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굳어졌다.
강원도는 전통적으로 보수 지지세가 강한 곳으로,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4년 만의 탈환을 노리고 있다.
그의 슬로건을 보고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세종과 황희의 일화다.
600년 전, 세종도 강원도에 '자기가 보낸 사람'을 내려보낸 적이 있었다.
때는 1423년, 세종 5년.
강원도에 가뭄과 흉년이 겹치며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들판은 비어가고, 고을마다 유민이 넘쳐났다. 세종은 기근이 만연한 강원도에 황희를 관찰사로 파견해 구휼하도록 했다.
세종은 대신 황희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비를 부를 수 없다면, 백성의 마음을 살피고 달래주고 오라.”
황희. 오늘날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강원도 땅을 밟던 당시는 아직 '명재상'이 아니었다. 유배 4년 만에 중앙 정계로 복귀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환갑의 나이였다. 세종이 자신의 세자 책봉을 강력히 반대했던 인물을 유배에서 불러내 중용한 것도, 그를 굳이 강원도로 내려보낸 것도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관찰사 황희는 각 고을 수령들이 불법으로 환자곡을 거두어들이는 정황을 직접 적발해 처벌을 요청했다. 진휼할 곡식을 백성 수에 맞게 추산해 국왕에게 올렸고, 도내 호수와 인구수를 정확히 파악한 뒤 기근으로 발생한 유민 수와 피폐해진 토지 결수를 낱낱이 보고했다. 그 위에 강원도에 배정된 공물의 종류와 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위로의 방문이 아니었다. 현장을 발로 뛰고, 숫자를 세고, 부정을 적발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들고 왔다. 이것이 세종이 보낸 사람이 한 일이었다. 황희는 이 공으로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훗날 우의정에 오르며 정승의 반열에 올랐다.
600년의 시간을 건너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면, 묘한 공통점이 보인다.
둘 다 강원도다. 예나 지금이나 강원도는 중앙의 손길이 아쉬운 땅이었다. 험한 산지에 인구는 적고, 자원은 풍부하지만 개발은 늘 더디다.
우상호 후보도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균형발전이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한다"며 "강원도 발전은 단순히 강원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균형 발전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세종이 황희를 보낸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둘 다, '왜 하필 이 사람인가'라는 의문 앞에 서 있었다. 황희는 유배까지 갔다 온 전력 있는 인물이었고, 우상호는 강원 출신이라고는 해도 오랜 세월 서울 정치에 뿌리를 둔 사람이다. 낯선 땅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는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보낸 사람’이라는 뜻은 단순히 ‘명령받은 사람’이 아니라, 신뢰를 받고 맡겨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세종이 황희를 믿고 강원도로 보냈듯, 지금의 정치도 그런 믿음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닐까.
'대통령이 보낸 사람'이라는 말은 사실 양날의 검이다.
힘이 실리는 동시에, 책임도 커진다. 황희가 강원도에서 실패했다면 세종의 신임도 흔들렸을 것이고, 백성들에게 황희는 그냥 '임금 심부름꾼'으로만 기억됐을 것이다. 그가 오늘날까지 명재상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왕의 신임을 받아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스스로 쓸모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우상호 후보는 "저는 대통령을 팔아 출세하러 온 사람이 아니다. 중앙정치 경험과 정책 이해도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구상해 온 강원도 발전 전략을 실현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 말이 황희의 행동만큼 진심이길 바란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현수막의 슬로건은 잊혀진다.
결국 기억되는 건 그 땅에 남겨진 발자국이니까.
강원도는 600년 전에도 지금도, '보내진 사람'이 아니라 '남겨질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