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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냥이 Sep 16. 2024

너무 답답한 만남

제발 좀 애들 길에 버리지 마세요

제발, 아이들을 길에 버리지 말아 주세요.





오늘 모처럼의 휴일이라 남편과 오전에 드라이브 겸 저수지로 산책 나왔다가, 제설함 뒤에 누워있는 노랑둥이 코숏 아이를 보았다. 축 늘어진 것이, 혹시라도 폭염에 탈수로 쓰러졌거나, 아니면 행여라도 죽은 건가 싶어서 다가갔다. 아이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구내염이 심한지 턱까지 피고름 범벅이었지만,


"아가, 괜찮아?"


말을 거는 내 목소리에 반응하여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길냥이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길냥이의 눈빛은 집냥이의 것과 완연히 다르다. 무감하다고 해야 할까. 야생 동물의 눈빛과 비슷하다고 하면 되려나. 하지만 녀석은 이지와 감정이 느껴지는, 집냥이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누군가 버리고 갔고, 그 아이는 엉망이 된 털과 상처 난 온몸에, 구내염까지 걸려서 사료도 제대로 못 먹어서 비쩍 마른 체구를 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아직도 사람에 대한 미련 섞인 애정을 지우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일단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뒤 남편에게 차 키를 받아 트렁크에 넣어둔 일회용 종이 용기에 어린 아기용 부드러운 무스형 파우치를 담아 녀석이 누워있던 제설함 뒤에 갖다 줄 심산이었다. 마침 어제 시댁에 다녀오느라 시댁에서 키우는 마당냥이에게 가져다주려고 이런저런 간식을 챙겨두었던 탓에 주고 남은 게 있음이 새삼 감사한 일이었다. 아기용 무스 참치 파우치가 아니었다면 구내염이 심한 그 아이에게 고통을 주지 않은 채 습기 많은 영양식을 챙겨주지 못했을 테니까.


내가 종이 그릇과 파우치를 들고 돌아서자 아이가 공영 주차장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종이 그릇에 파우치를 뜯어주자 어쩌면 며칠, 아니 몇 달 만에 보는 습식보다 내 손에 얼굴을 먼저 비볐다. 꽃길이를 주웠을 때가 생각났다. 하필이면 생긴 것도 꽃길이와 패턴이 거의 흡사한 치즈태비여서 더 그랬다. 내가 얼마든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마당 있는 주택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못해 우리 집에 조금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하지만 우리 집에는 이미 구내염 투병 중인 새론이가 있고, 나도 최근 임신과 유산으로 경황이 없어서 열일곱 마리의 내 새끼들조차 충분히 케어를 해주지 못한 상황이었다. 섣불리 합사를 했다가 노령묘인 티나와 아름이, 보담이가 옮으면, 감당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전혀 길냥이 답지 않게 발 밑에서 허겁지겁 습식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을 다했다. 왜 나는 좀 더 형편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애교 많고 사교성 좋은 아이를, 길에다 버린 사람은 대체 어떤 인간일까. 그 사람에게 아이의 몰골을 보여주고 싶었다. 피고름이 말라붙은 아이의 하관과 목덜미를, 물리고 찢겼다가 상처 그대로 아문 귀를, 군데군데 털이 빠진 피부 위로 도드라진 상처와 푸석한 털결, 삐쩍 말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앙상한 몸체를, 그럼에도 처음 보는 내게 기대어 오는 처연한 눈망울을. 당신이 버리고 돌아서서 편히 지내고 먹는 동안 이 아이는 길 위에서 상처 난 발로 윽박지르는 사람들을 피해서 도망치고, 물 한 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먹이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상처투성이 몸이 되었노라고. 이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고도 당신은 편히 밥이 넘어가고 밤에 잠은 오더냐고 묻고 싶기도 하다.


남편은 아이를 데려오면 치료는 해줄 수 있어도, 키울 수는 없노라고 못을 박았다. 우리 사정상 너무 많은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기에, 타당한 말이었다. 서운해할 것도 없었다. 치료를 하고 방사할 자신이 있냐고, 나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주택이 아닌 게 그저 슬펐다. 내 집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따로 공간을 만들어 치료해 줄 텐데.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한 채 한참을 서있었다. 망설이고 주저하는 내 눈빛에서, 내 감정을 헤아렸을까. 분명히 이리 오라고 말해줬다면, 같이 가자고 말해줬다면 스스로 켄넬이든 상자든 들어와 줬을 아이는, 스스로 먼저 돌아서 웅크리고 있던 제설함 뒤에 웅크리고 앉았다. 나도 그런 아이의 웅크린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울어버렸다. 마음이 너무 갑갑한 하루다.


제발, 연휴 핑계로, 온갖 핑계로 아이들 좀 버리지 마세요.


아니 데려오기 전에, 백 번 아니 천 번이라도 고민하세요.


아이는 아프면, 병원비로 천만 원 정도 깨지는 건 일도 아니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쳐지지 않는 배변, 배뇨 습관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전혀 애교가 없을 수도 있고, 당신이나 당신의 소중한 이들에게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공격성을 표출할 수도 있고, 당신은 아이와 함께하면서 알지도 못했던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기거나 악화될 수가 있고, 당신의 이사 가고 싶은 집에서 고양이를 반대할 수도 있고, 당신의 가족이 될 사람들이 고양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당신은 고양이 때문에 앞으로 여행 따위를 꿈도 꾸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아이는 대개의 경우 당신보다 먼저 별이 되어 떠나가게 될 겁니다.


이 모든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고, 천 번 만 번 같은 답이 나온다면, 그때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세요. 당신이 너무 다양한 사유로 손을 놓은 당신의 아이의 삶은, 만신창이, 그 자체가 될 수밖에 없어요. 아이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버린다고 하지만 버려진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은 정말이지 확률이 극히 낮은, 이루어지지 힘든 소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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