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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냥이 Aug 22. 2024

뚱냥똥냥3 -어쩌다 열일곱 마리나 키우게 되었나요?

내 영원한 장남, 달땡이- 이렇게나 예쁜데 네 번이나 파양 당했다고?

<뚱냥뚱냥 시리즈는 좌충우돌 입양 및 출생 기록을 담은 시리즈입니다. >


뚱냥똥냥 3화


내 영원한 장남, 달땡이

이렇게나 예쁜데 네 번이나 파양 당했다고?




내가 달땡이를 만난 건 회사에 입사하고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늦여름의 어느 평범한 퇴근길이었다. 나는 회사 로비에서 이동장 속에 실린 고양이를 건네받는 회사 동료를 보았다.


그 동료는 사내에 몇 명 없는 같은 대학 출신이었다. 나이 차도 2년밖에 나지 않은 같은 성별의 동료. 입사는 나보다 빨랐지만 내가 대학 선배이기도 해서 언니 동생 하며 친근하게 지내던 차였다. 그래서 나는 인사를 건네며 슬며시 이동장 안에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사람이 많은 로비에서 고양이를 꺼낼 순 없었기에 격자문 너머로 눈만 보았지만 너무 예뻐 보였다.


세상에나, 고양이! 내 지인 중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생기다니. 놀러 가도 되냐는 물음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동료는 내 관심에 반색을 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반가운 일. 아마 그 동료도 그랬던 거 같다. 그 주 주말 동료네 자취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동료가 분양받은 고양이는 노르웨이숲이라 불리는 품종묘였다. 나는 그런 품종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긴 털에 커다랗고 우아한 몸매와 커다란 덩치와 달리 단숨에 장롱 위까지 뛰어올라가는 민첩한 몸짓을 그저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내가 그때까지 본 고양이 중에서 제일 특이하고 예쁘다고만 느꼈던 것 같다. 정작 분양받은 동료는 고양이가 너무 크고 활달해서 무섭게 느껴질 때도 많다고 했지만. 나는 그때 좀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는 결국 해당 고양이를 파양 했다고 들었다. 이후로 그 예쁜 고양이가 어찌 되었는지 그 행방에 대해서는 차마 묻지 못했다. 몇 년 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내 어린 냥이 제제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날 밤 동료네서 멋지고 아름다운 노르웨이숲 고양이를 보고 반한 나는, 그날 밤 집에 와서 노르웨이숲 고양이를 검색하며 그 고양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특정 품종묘만 전문적으로 브리딩하여 분양하는 캐터리라는 곳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국내에 캐터리가 많지 않았을 때였다. 캐터리 초창기에도 노르웨이숲 고양이는 정말 예뻐서인지 그 품종에 반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날 밤 난 블루 드라이어드라는 아직도 존재하는 노르웨이숲 캐터리를 발견했다. 캐터리에 있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다 멋지고 예뻤지만, 사리라고 불리는 은회색 털의 고양이는 정말 요정 같았다. 너무 예뻐서 한순간 넋을 잃고 컴퓨터 화면을 보았을 정도로.   


고양이들은 다들 예쁘지만, 주변에서 직접 고양이를 입양하는 걸 보고, 또 캐터리를 뒤적이고 있자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내 고양이의 꿈이 다시금 타오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사리가 너무 예뻐서, 캐터리 분양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해당 해에 사리라는 아이의 추가 리터 계획은 없었고, 캐터리 분양은 절차도 너무 복잡했고, 시간도 너무 많이 걸렸다. 돈을 주고 생명을 사는 게 조금 꺼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동료가 고양이를 소개받게 된 경로가 생각났다. 연결해 주신 분이 팀장님이시라고. 팀장님이 건너 건너 알게 된 지인분이 키우던 세 고양이를 각기 따로 분양 보냈는데, 세 아이 모두 갈 데가 없어서 그중 한 마리를 데려온 것이라던 말이 귓가에 맴을 돌았다.


한 마디는 동료가 분양받았다 치고, 나머지 두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불현듯 궁금해졌다.


동료네 집에서 본 아이는 너무 예뻤고, 내게도 그런 고양이 인연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나는 넌지시 나머지 두 고양이의 행방을 여쭤보기로 했다. 몇 다리 거쳐서 들어온 소식이긴 해도, 나머지 두 아이의 행방에 대해서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마리의 입양처는 결정된 듯했고, 나머지 한 마리가 벌써 세 번 파양 당해서 네 번째 집에 갔는데, 네 번째 집에서 새로 작은 고양이를 분양받으면서, 원래 분양자에게 다 커버린 이 아이를 도로 데려가든지, 아니면 버리겠다고 했다고. 그래서 최초 분양자의 어머니가 그 아이가 갈 곳을 다급히 찾고 있다고.  


내심 충격이었다. 혹여나에게도 동료처럼 우연히라도 예쁜 묘연이 닿으면 좋겠다고 여기긴 했지만, 몇 달이든 며칠이든 집에서 같이 지낸 아이인데 파양도 아닌 유기하겠다니? 좋은 곳을 찾아 재분양도 아니라?


이유를 물어봤더니 너무 크고 못생겨서라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내 고양이 세상엔, 고양이는 자랄수록 멋있어지는 동물인데?


내가 그 아이를 꼭 데려오고 싶었다. 세상에 불쌍한 아이는 많고, 그때도 많았겠지만, 갈 곳을 잃은 그 아이를, 아니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손에 조금도 맡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과 상의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입양할 방도를 반드시 마련해 볼 테니, 그 아이가 유기되지 않도록 꼭 조치해 달라고 전해주십사 했다. 그렇게 나는 얼굴도, 나이도, 성별도 모르는 다 큰, 못생겨서 버림받을지 모를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사나흘이 지나고, 나는 건너 건너 아이를 버려버리겠다고 협박하던 여자의 연락처를 받아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목동의 한 아파트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가족들의 마음의 준비와 물리적 준비가 될 때까지 아이는 친구가 자취방에서 기꺼이 임보 해주기로 했다. 고마운 말이었다. 나는 하루빨리 데려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목동의 아파트 앞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도착했다고 연락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에 메는 자그마한 천 캐리어 하나를 들고 한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캐리어를 아무 말 없이 내게 내밀었다. 캐리어가 작았기에, 나는 한 손으로 받으려다가 순간적으로 확 느껴지는 무게감에 나도 모르게 휘청하며 황급히 두 손으로 캐리어를 붙들었다. 도무지 캐리어 크기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무게.


아이가 너무 크고 못나서.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동시에 이 무게감을 지닌 아이가 어떻게 저 작은 캐리어에 들어가 있지? 의문이 들었고, 다음 순간 차에 타자마자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억지로 구겨 넣듯 작은 캐리어에 아이를 몰아넣은 건 아닐까. 아이가 구겨진 채 팔다리도 못 펴고 아프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황급히 뒷 자석에 올라타 문을 닫고,


"아가, 괜찮아. 나와도 돼. 이쁜 아가."


캐리어의 지퍼를 열면서 조심스레 아가를 불러보았다. 아이는 회색 모질의 아이였다. 잠시 머뭇하다가,


"아이 예쁘다, 우리 아가. "


내가 예쁘다고 몇 번 부드럽게 말을 건네자 조금씩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작은 캐리어 안에 구겨져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참 나온 느낌이었다.


남들이 크고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한 내 아이는, 말도 안 되게 예뻤다. 많은 이들에게 같은 사유로 몇 번이나 버려졌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는지, 털은 푸석했고 짙은 회색빛이었지만, 눈빛은 어두워져 가는 저녁 시간에도 선명하게 아름다운 황금빛을 띠고 있었고, 동그스름한 얼굴에 귀엽게 반으로 접힌 귀까지, 도무지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아이는 흑표범 같이 크고, 멋지고, 세상에나, 귀엽기까지 했다!


내가 연발한 예쁘다는 말은 정말 순도 100%의 진심이었다. 그때의 내 진심이 달땡이에게 전해졌을까? 예쁘다는 소리는 이후 달땡이가 가장 좋아하는 한 마디가 되었다. 약 먹을 때도, 목욕할 때도, 심지어 가장 싫어하던 빗질을 할 때도 달땡이는 예쁘다고 하면 좀 참아줄 정도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를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빨리 데려가라 했던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이의 이름은 뚱땡이고, 로열캐닌 사료를 먹었다.'라고.


 이렇게 예쁘고 늘씬한데, 원래 스코티쉬 폴트는 비 체형이라 동글동글한 느낌이 있다. 달땡이는 아마도 브리티쉬숏헤어와 믹스종인 듯했다. 통상적인 스코티쉬 폴트보다는 체구가 크고 다부졌으니까. 그래도 객관적으로 살이 찐 느낌은 없었다. 다만 키가 클 뿐.


나는 황급히 아가의 이름부터 바꿔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평생 갈지 모를 아이의 이름을 애정 한 톨 없이 뚱땡이라 부르다니. 그 집에서 아이가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 가히 상상이 되었다. 절대로, 이 아이만큼은 끝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져 줄 거야.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며 예쁜 아이의 이름을 고민했다. 마침 달땡이를 만나 데려가는 날 차창 너머의 보름달이 아주 예쁘게 떠있었고, 아이의 눈이 달빛처럼 예뻤기에, 달덩이, 했다가, 조금 귀엽게 '달땡이'라 부르기로 했다.


내게로 와줘서 고마워, 달땡이. 내 예쁜 아가.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달땡이를 처음 만난 그날의 보름달을 나는 잊지 못한다. 너로 인하여 내 삶이 환한 달빛으로 찬란했던 것 역시. 그렇게 내 목숨처럼 소중한 내 아들, 나의 영원한 장남이 내 곁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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