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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냥이 Aug 23. 2024

뚱냥똥냥4 -어쩌다 열 일곱 마리나 키우게 되었나요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렴, 이삿날 길에서 만난 잘생긴 치즈태비 내 아들

뚱냥똥냥 시리즈는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좌충우돌 입양과 출산 이야기를 다루는 시리즈입니다.




뚱냥똥냥 4화 - 어쩌다 고양이를 열 일곱 마리나 키우게 되었나요?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렴, 이삿날 길에서 만난 잘생긴 치즈태비 내 아들






꽃길이는 우리 집에 있는 열일곱 마리의 고양이들 가운데서 마음의 준비든, 물리적인 준비든, 전혀 의도치 않게도 맞아들인 유일한 고양이이다. 내가 꽃길이를 만난 건 작년 3월 초,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차갑게 불어서, 카디건보다는 얇은 파커 점퍼가 더 잘 어울리는 날의 일이었다.


꽃길이는 우리 집에 들어온 순서대로는 티나와 키움이를 제외하면 실상 막둥이에 가깝다. 실제로 꽃길이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티나와 키움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으며 입양하고 싶어 했기에, 막둥이라는 말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길이 이후로 추가로 입양한 아이가 없기도 하고.  


지난 2월, 갑자기 확 불어난 고양이 개체수에 따라 좀 더 쾌적한 아가들의 삶을 위해서, 우리 집 이삿짐의 3/5를 차지하는 나의 책과, 음반, 영화 dvd, 콘서트 블루레이와 안 입는 옷, 안 쓰는 가전, 덜 쓰는 가구, 부엌살림과 계절이 지난겨울 카펫, 이불 등을 보관하기 위한 20평 대 아파트를 세컨드 하우스 삼아 시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매해 뒀다. 집 이전 등기를 완료하고, 3월 초에 나는 이삿짐센터에 예약을 걸어 본채의 살림살이를 아침 일찍 보내기로 했다.


이삿짐센터 분들은 8시가 되기 전에 오셨다. 8시 넘어서 느긋하게 오시는 줄 알고 늦장을 부리고 있던 나와 남편은 부랴부랴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어 내부의 짐을 옮기지 않는 안방과 고양이방으로 쓰는 두 번째로 큰 방에 나누어 넣어놓았다. 당연히 이삿짐센터 분들은 우리가 부랴부랴 움직이면서 고양이를 안아 이동장에 넣어 놓는 것을 보았고, 와아, 이 집은 고양이가 굉장히 많다고 이야기하셨다. 예쁜 아이들도 많다고, 이삿짐센터 운영하시는 분도 고양이를 키운다고, 짐을 다 옮기고 식사를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본채에 있는 짐을 다 빼는 동안 나는 먼지가 피어오르는 바닥을 쓸고 닦은 뒤, 아이들을 풀어주고 물과 음식을 넉넉하게 챙겨준 뒤, 도보로 5분 거리에 사는 남동생에게 한 번 들러 아이들을 봐달라고 부탁하고는 짐이 들어갈 세컨드 하우스로 출발했다.


점심 식사를 근방 먹자골목에서 사드릴 요량이었으나,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이삿짐센터분들은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백반집에서 식사를 하시고 계셨다. 조금 늦었지만 가서 식대를 계산해 드리니, 도리어 고마워하셨다. 우리도 같이 백반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백반집 사장님과 이모님은 서글서글한 성품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다가, 우리 집에 고양이를 많이 키운다는 이야기가 이삿짐센터 직원분의 입에서 나왔고, 그러다가 며칠 전에 이사를 가면서 누군가 버린 걸로 추정되는 고양이가 상가 앞을 돌아다니는데 불쌍해 죽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이가 사람을 굉장히 잘 따라서 상가의 다른 음식점을 하는 분이 불렀더니 길을 건너왔다고, 지금은 그 사장님이 가게 앞에 마련해 준 거처에서 지내고 있다고, 고양이를 좋아하면 우리더러 그 아이를 키워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셨다. 말만 듣고 덜컥 입양할 수는 없고, 차에 고양이 사료가 있으니 사료랑 물이나 조금 챙겨주고 가자고 하며, 차에 들러 사료를 편의점에서 산 종이 접시에 물과 함께 담아 아이를 맡아주고 있다는 가게로 갔다.


점심을 먹은 가게보다 아담한 가게 앞, 허름한 나무 탁자 위에 종이 박스가 옆으로 세워져 있었고, 박스 안에는 두툼한 겨울 파커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비쩍 마른 노란둥이 치즈 냥이가 기운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상자 옆에는 닭고기가 섞인 국물에 만 밥이 반쯤 마른 채 놓여 있었다. 언제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그날 이른 점심까지 밥을 먹지 않은 듯 보였다. 고기가 섞인 밥이긴 해도, 집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 먹는 고양이 전용 사료가 더 도움이 될 건 뻔해서, 가게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밥그릇을 아이 앞에 놓아주었다.


"아가, 좀 먹어봐. 먹어야 버티지."


분명히 사료 냄새가 날 테고, 밥을 먹지 않았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한데, 아이는 웅크린 자세 그대로라 약간 조바심이 난 나는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권해 보았다. 애교가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아마도 손을 탄 게 확실해 보이는 노랑둥이 치즈냥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나를 봤다. 나는 아이 앞으로 사료 그릇을 조금 더 밀어주었다. 아이는 킁킁 냄새를 맡더니 한 입 먹고 다시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더 먹어."


다정하게 말을 건네자 아이가 희미하게 울면서 몸을 일으켰다. 인사를 하려는 듯.  


"먹고, 잘 지내렴."


밥을 먹는 걸 봤으니, 가야겠다고 남편을 바라보자, 남편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돌아서려 하자, 상자에서 일어난 고양이가 쫓아오려는 듯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이는 꾀죄죄하고 비쩍 말라 있었다. 외관상 상처는 없어 보였지만, 길냥이의 건강이란 늘 장담할 수 없는 부분 아닌가. 두고 오는 게 미안했지만, 당장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기에, 아이를 제지시켰다.


"안 돼. 따라오면. 차가 많이서 위험해. 가기 전에 다시 보러 올게. 밥 먹고 있어."


말귀를 알아듣는 걸까. 아이는 제 자리에서 두어 걸음 떼었다가 멈추어 앉았다. 묘하게 서글픈 눈이었다. 비 맞은 강아지 같아, 눈이.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집에 들어와 짐을 안으로 나르고 정리하다가, 우연찮게 이동장 하나가 짐에 섞여 들어온 게 보였다. 마치 운명처럼.


켄넬에 박혀 있는 내 시선이 남편을 향했을 때, 남편이 운을 떼었다.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아직 날도 쌀쌀하고, 상가 앞은 바로 대로변이다 보니 밤에 다칠 수도 있을 거 같고..."

"그럼 데려가자."


벌써 한 달 넘게 아무도 데려가는 이 없이 공장에서 지낸다는 아메숏 고양이 남매(실상은 자매였던 키움이와 티나)가 떠올라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던 내 마음속을 마치 들여다본 것처럼,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신경 쓰인다던 공장 고양이들에게도 연락해 봐도 돼."

"어, 응? 정말?"

"아직 입양 안 됐으면 걔들도 우리가 데려오자."

"고마워!"

"자긴 남편 잘 만난 줄 알아."   

"사랑해요."


와락 안기는 나를 마주 안아주면서, 이럴 때만 사랑한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남편은 내가 하고픈 일은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나는 남편이 말썽꾸러기 어린 손녀가 마냥 예쁘기만 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인 남편.


나는 얼른 짐을 정리하고, 먼지가 떨어진 바닥을 물티슈로 서둘러 닦아낸 뒤에 이동장을 챙겨서 꽃길이를 본 식당으로 갔다. 식당 주인은 허락이라고 할 것도 없이 기뻐하셨다. 박스와 점퍼로 만든 간이 처소라고는 해도 음식을 파는 식당 앞에 길냥이의 처소를 마련해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마음씀이 고우신 분이었다.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며 아이를 안아서 이동장에 넣는데도 노랑둥이 치즈냥이는 거부의 몸짓이 전혀 없었다. 이사 가면서 누군가 버리고 간 것 같다는 식당 분들 말씀 따라 길냥이라기에는 손을 탄 흔적이 너무 많은 아이였다. 순하게 안겨서 이동장에 들어간 아이를 앞 좌석에 안고 탔다. 차가 출발하니 아이가 이동장 안에서 끼잉, 낑낑 하고 작게 울기 시작했다. 빼빼 말라서 그렇지 이동장이 작아서 몸을 움직일 수 없어 그런가 보다 싶어서 지퍼를 열었더니, 아이가 쓱 하고 나왔다. 운전 중인 차 안을 막 돌아다니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처럼, 이동장에서 나온 아이는 수더분하게 내 상체에 온몸을 기대로 얌전히 앉아 골골거리기 시작했다.


12년을 키운 우리 첫째조차 이런 무릎냥이 기질을 보인 적은 없었다. 꽃길이는 우리 집에 있는 열일곱 마리 개체 중에서 나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다. 안기는 것도 미친 듯이 좋아하고, 내가 애착의 대상이라는 듯이 밤이 되면 침대 위로 올라와 온몸을 내게 기대거나, 베개 위로 올라와 내 머리통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잠들곤 한다.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그 기질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아이를 부드럽게 쓸어주다 보니, 몸에서 딱딱한 덩어리가 몇 개 만져졌다. 다묘 가정인데, 이대로 집에 데려갔다가는 난리가 날 것 같아, 우리는 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동물 병원에서 아이의 몸에서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진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은 진드기라 하면서 진드기를 꽃길이의 몸에서 4개나 잡으셨다. 진드기라니, 얼마나 아팠을까. 집에 다른 고양이가 있다고 하니, 2주 정도는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다 하셨다. 구충제를 바르고, 소독약을 바르고, 중성화 여부를 확인받고, 간단한 검사로 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받은 뒤에, 아이를 데려와 문간방에서 내려놓고, 바닥에 카펫을 깔아주고 기대어 잘 수 있을 숨숨집과, 방석, 스크래처형 집, 화장실과 물과 밥, 간식, 그리고 작은 캣타워를 넣어주었다. 아이를 데려온 작은 이동장은 소독한 뒤에 버렸고, 내 신발에는 소독제를 뿌리고, 옷은 세탁기에 따로 넣고 돌리고 나와 남편은 바로 샤워를 했다. 그러고도 집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진드기가 옮을까 염려가 되어, 이주나 먼저 심상사상충 약을 발라주었다.


다행히도 꽃길이는 달리 아픈 데가 없었다. 아이는 갇히는 게 싫은 건지, 혼자 남겨지는 게 싫은 건지 자주 울었고, 그때마다 들어가서 족히 한 시간은 안아주어야 했지만, 나는 혹시 모를 감염을 우려하여 격리 기간을 지켰다. 격리 기간 내 다른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았던 꽃길이는 한 달쯤 지나  격리방에서 나왔다. 사람에게 살가운 녀석은, 고양이에게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못 먹고 지내서 살이 빠져서 그렇지, 잘 먹여 살을 찌우니 대형종인 해랑이랑 거의 비슷해졌다. 체급차가 많이 나는 아이들이랑은 곧잘 지내는데, 체력적으로 비슷한 아이들에게 더 공격적이었다. 때론 투닥거림도 있었지만, 1년 가까이 지내며 형제라는 걸 인정했는지 요새는 거의 안 부딪치고 나름 잘 지내고 있다.


길냥이로 태어났는지, 아니면 집냥이었는데 나쁜 사람 만나 길에서 버려져 방황하고 힘들어하던 차에 나를 만난 내 새끼, 꽃길이가 남은 생은 늘 꽃길만 걷기를 바란다. 항상 건강하렴,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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