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과 싸우는가
앤드루 도이그의 <죽음의 역사>를 읽고 쓴 사유 노트입니다
<죽음의 역사>
-앤드루 도이그
-브론스테인
우리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 <죽음의 역사>를 읽다가 떠오른 것들
<죽음의 역사>를 읽는 동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하나씩 불려 나왔다. 제멜바이스가 산욕열의 원인을 추적하는 대목에서는 <의학의 대가들>이 겹쳐졌고, 황열병과 말라리아와 투쟁하는 장면에서는 <모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모기 퇴치의 기적으로 등장했던 DDT가 생태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다시 <침묵의 봄> 앞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책 한 권을 읽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서로 다른 책들이 하나의 지도 위에 놓이며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텍스트가 인류와 생명군집 사이의 투쟁의 역사처럼 읽혔다. 인간은 질병을 제거하고, 해충을 없애고, 죽음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우리는 그것을 문명의 진보라고 불러왔다. 더 정교한 약, 더 강력한 살충제, 더 효율적인 의료 체계.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통제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책을 계속 읽어가면서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이 통제하려 할수록 자연은 내성을 키웠고, 기생충은 약에 적응했으며, 생태계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무너졌다.
제거하면 끝날 것 같았던 문제들은 더 넓고 깊은 균열이 되어 되돌아왔다. 그때 나는 이것이 자연과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에리히 프롬이 떠올랐다. 병으로 통칭되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그것을 통제하고 제거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하려는 인간의 방식은 프롬이 말한 소유 양식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소유의 방식은 세계를 분리된 객체들의 집합으로 본다. 그것은 대상을 붙잡고, 분류하고, 관리하고, 지배함으로써 불안을 잠재우려 한다. 그러나 프롬이 말했듯 소유는 불안을 끝내 해소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잃을까 두려워지고, 더 강하게 통제할수록 더 큰 반작용을 불러온다. <죽음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 역시 정확히 그것이었다. 인간은 죽음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죽음의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성이 생기는 기생충은 무엇인가. 생태계의 반발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단순한 자연의 저항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첼 카슨이, 제인 구달이, 피터 싱어가, 로빈 월 키머러가 저마다 다른 언어로 되풀이해온 것, 곧 공존, 관계, 참여, 균형의 감각.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이 섭리라는 이름으로 인류에게 건네는 또 다른 지혜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세계를 소유의 방식으로 다룰 때마다 자연은 내성과 붕괴, 소멸과 역습의 형태로 답해왔다. 그리고 그 응답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이 세계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장이라는 것. 우리는 지배자가 아니라, 그 안에 잠시 놓인 하나의 변수라는 것.
존재의 방식은 여기서 시작된다. 인간은 세계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다. 생명은 독립적으로 존속하지 않으며, 언제나 다른 생명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지속된다. 말라리아의 역사도, 산욕열의 역사도, 살충제의 역사도 결국 하나의 사실로 수렴한다. 죽음조차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 역시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더 제거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무엇을 더 없애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하는가.
인류가 자연과 싸워온 역사는 사실 외부의 적과의 전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세계를 잘못 이해한 채,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생명의 조건들을 적으로 오인한 긴 오독의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연을 이기려 했지만, 실은 자기 삶의 토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생명군집을 상대로 한 전쟁은 결국 인간 자신을 향한 전쟁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단순해진다. 우리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질병인가, 곤충인가, 죽음인가. 아니면 세계를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 자신의 오만인가.
내가 <죽음의 역사>를 읽으며 끝내 도달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인간을 살릴 것은 더 강한 통제의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관계로 이해하는 감각이다. 더 많이 제거하는 힘이 아니라, 더 깊이 연결되는 능력이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왔다. 우리가 끝내 배워야 할 것은 승리가 아니라 공존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앞으로도 죽음과 싸우는 척하며, 실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일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반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