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투자를 했던 외국 투기자본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죠. (갑자기 재벌집 막내아들이 떠오름)
누군가에게는 이런 것들이 일종의 '가십거리'로 비춰질 수 있으나, 기업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사실 이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제대로' 이해하려면 말이죠.
그렇다고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수치나 재무비율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냐?'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숫자 이면을 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
실사 자리에서 '당신네 부채비율은 이렇고 저렇고 한데 왜 그러냐?'라고 물어보는 것은 하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 정말 말 그대로 '아기 심사역'때나 하는 것.
고수들은 IR 자료에서 물어보는 것이 다르죠. (물론 제가 고수라는 의미는 아님)
관련된 이야기 썰 풀어봅니다.
이제는 다른 회사에서 경험했던 일이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지금처럼 방산업계가 막 떠오르기 시작하기 바로 전, 풍산에 기업실사를 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풍산은 우리나라에서 한화와 더불어 Top 2의 방산업체입니다.
재무지표에 대한 질문을 IR 담당자에게 하지 않도록 심사역 보고서와 질문에 대한 스캔은 이미 완료되었던 상태.
그런데 상대방인 IR 담당자가 반응이 조금 냉랭하더군요.
'단순히 재수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실력은 있는데 원래 태도가 이런 건가?' 문득 시험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1. 탄피 만드는 회사인데 ESG 때문에 외국계 자본들의 투자금을 받기 어려운 거 아니냐?
답변 : 방위산업은 우리나라 국민을 지키는 산업이다. 우리는 분단국가이다. 국가의 방위에 이바지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ESG에 우리보다 부합하는 기업이 어디있나?
답변을 듣자마자 '요놈 봐라'라는 생각이 딱 들더군요. 대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2. 기업 이름이 왜 풍산인가?
답변 : (이런 걸 왜 묻지? 조금 당황하며) 회장님 성함이 류진이다. 참고로 풍산 류씨이다.
듣자마자 '오늘 건진 건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진정한 실력자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 답변을 하는 분은 많지 않기 때문이죠.
갑자기 글을 쓰는데 이분이 아직도 근무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암튼 이후 심사역 회의를 거쳐 해당 기업 투심위를 열었습니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오고 가더군요.
물론 저는 담당 심사역이 아닌 파트장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가만히 듣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질문에 심사역이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질문은 바로 이것.
'재무안정성이 좋다고 하는데 이게 방위산업 전반에 대한 것이냐? 업계가 워낙 좁기 때문에 peer 기업에 대한 분석을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다른 회사 임원으로 가신 팀장님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는데 나름 합리적이었습니다.
긴장한 심사역이 땀을 삐질삐질 하길래 안쓰러워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위원님 말씀처럼 비교군이 적은 건 맞습니다. 부채비율이 80% 내외이지만 수치상이고 이것이 업계 관행 대비 높은지 낮은지 이야기 하기는 판단하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냥 이름 자체부터가 보수적입니다. 저는 몰랐는데 풍산이라는 기업명이 회장님 성함과 관련 있다고 합니다. 류진 회장님이 풍산 류씨라고 해요. 얼마나 보수적입니까? 이 이야기 듣고 재무안정성도 여기에 기반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쁘게 봐주세요!~'
그랬더니 한분이, '그럼 나는 전주 이씨인데 내가 회사차리면 전주야?'라고 아재 개그를 하더군요.
의심하던 무거운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순간, 속으로 '통과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투심위 역시 큰 무리없이 마무리.
...
하나의 예를 들어서 설명했는데 결국 남과 다른 경쟁력과 핵심은, 결국 잘 해석하는 능력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고보면 브리핑을 잘하는 것도 심사역에게 중요한 Skill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과 산업에 대한 전방위적인 이해가 필수입니다.
신평사 자료만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
여기까지 쓰다보니 갑자기 드는 의문 한가지가 있네요.
요즘 그런 브리핑 능력을 갖추고 있는 심사역이 얼마나 있는지 말이죠.
여기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해보면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아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
P.S. 이후 풍산 주가는 엄청나게 올랐으나 프런트에서는 신용등급이 A+에 불과하다는 의견으로 투자하지 않았음. 죽써서 개준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