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융권과 2 금융권에 대한 이야기
뭣이 중헌디?
"에이. 대주단이 대부분 2금융권이잖아요. 레벨이 낮은 것 같아보여서 이런 건은 안 들어가려고요."
"대주단 리스트 한번 불러줄래?"
"산은캐피탈, 신한캐피탈, SBI 저축은행, JB우리캐피탈이네요. 은행은 없어요."
"거기 주관사가 어디니? 전화번호는 있고?"
"네. 그런데 왜요?"
"아. 우리 프런트 연락처 전달해주려고.왠지 좋은 딜 같아서."
"선배 회사는 안전한 것만 한다면서요? 2금융권만 있는 것도 해요?"
"2금융권? 그것도 나름이지!"
전화통화로 자문을 해주다 여러 생각이 들어서 씁니다.
제가 취업할 때만 해도 (벌써 20년 전) 1 금융권 진입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외의 기관들은 다 듣보잡 취급을 당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때의 저 역시 딱 그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거죠.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젊은 친구들의 인식도 훨씬 깨어있습니다.
참고로 그동안 1금융권에서 한 번, 2금융권에서 3번 근무했습니다.
이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 하는 거라는 말입니다.
위에서 2금융권에 속한 기관들을 듣보잡 취급하는 상대방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제가 근무했던 2금융권은 왠만한 은행보다 규모가 큰 곳이었어요.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스펙도 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죠.
SKY는 기본이고 해외 대학 출신들도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틈에서 일하느라 정말 힘들긴 했지만)
자격증도 CPA, 계리사, CFA가 넘쳐났죠.
영어 실력들도 다들 한가닥씩 했고 쓸 수 있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갑자기 부문 대표에 보고하러 가는 길에 프랑스 자산운용사 대표와의 미팅에 끌려가 영어로 1시간 동안 회의했던 게 기억나는군요. (진땀을 흘렸죠)
그만큼 다양한 경험과 폭넓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2금융권이지만.'
인수금융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저에게는 SBI저축은행이 우리은행보다 더 잘하는 플레이어입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들은 제가 '괜찮은 딜 같은데'라고 이야기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투자를 했으니까요.
'비록 2금융권이지만.'
산은캐피탈의 경우는 또 어떤가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Equity 출자와 인수금융도 잘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비록 2금융권이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비록 2금융권이지만', 조직의 규모가 다르고 그 시작이 다를 뿐, 각자가 잘하는 시장이 있다는 것.
1금융권, 2금융권에 대한 구분이 실력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새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스펙이 좋으면 성공하기 수월하지만, 스펙이 좋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점 입니다.
물론 스펙은 좋으면 정말 좋습니다.
먹고 들어가는 게 꽤 많죠.
그리고 열심히 공부한 것도 인정해줘야죠.
다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한동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에 짓눌려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심했냐면 인생 첫 좌절을 선사해준, 신촌의 독수리 대학 근처에는 거의 5년 동안 가지도 못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곳을 매주 와이프와 산책하면서 걷고 있으니 사람 인생 참 모를 일입니다.
...
또 한때는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을 아무 이유없이 우러러 보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40대에 접어들면서 느끼는 건 뉴스에서 나오는 나쁜 일 하는 정치인들은 죄다 서울대 출신이더군요.
(물론 훌륭하신 분이 더 많다는 거, 잘 알고 있음)
비약일수도 있지만 '1 금융권, 2금융권에 대한 구분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서울대 나온 사람이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지 반드시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아닌 것처럼,
2금융권이라고 반드시 1금융권에 비해 그 능력이 획일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 거라는 말이죠.
저처럼 2금융권에 근무한다고 무시받는 언더독들.
화이팅 하시길.
오늘은 여기까지!
P.S. 국민연금은 1금융권일까요? 2금융권일까요? 한국지방행정공제회는? 과기공은?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