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2002년 무더운 여름날, 나는 월드컵 베이비라는 붉은 이름표를 달은 채 딸만 있는 집에 둘째 딸로 태어났다.둘째는 아들이길 바랐던 부모님 기대와는 다르게 둘째가 또 딸이라니. 그것도 연년생. 눈물 벅찰 탄생의 뜨거운 감동이
그리 크고 길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그렇게 그 갓난아이의 눈칫밥은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부터 저절로 차려지기 시작했다.
둘째인데다 성별까지 같으니 언니가 입던 헌 옷과 신발을 물려받고는 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언니가 보던 책, 언니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나에게 비싸고 좋은 물건은 늘 언니 손을 거쳐야만
나에게로 올 수 있는 일명 “언니 컬렉션"이었다.
둘째인 나도 세상 밖에 나오자마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경쟁자의 존재 때문에 서러운 것으로는 저리
가라인데 오로지 혼자 받던 관심과 사랑이 둘로 분산되는 것을 느꼈을 언니의 마음의 공백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와 나는 서로를 질투했다.그러면서도 서로를 믿고 의지했다. 이렇게 우리의 애증의 관계는 세월에 겹겹이 쌓여 더욱 두터워져갔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나는 죽을 때까지 힘이면 힘, 말빨이면 말빨그 어떤 식으로도 언니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생 1년 선배 언니 타이틀에 스스로가 눌려 버린 것 같았다.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는 인생의 쓴맛을 알아버린 어린 나는 계획을 바꾸기로 한다. 바로 언니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언니가 받는 사랑보다 더!
탄생의 순간, 잘 차려놓은 눈칫밥을
이제는 스스로 떠먹어야 할 순간이었다.
눈칫밥을 떠먹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누군가의 말투에서, 눈빛에서, 분위기에서, 침묵에서.
그냥 그 안에서 나의 자리를 조용히 찾기만 하면 됐다.
그러며 사람을 살피는 법을 배웠고 감정을 조율하는 법도 익혔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서러운 눈칫밥은 지금의 나를 꽤 섬세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반대로, 눈치가 없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모든 성질에는 양면이 있고, 장점 뒤에는 단점이, 단점 뒤에는 장점이 줄지어 있는 법이다. 마치 “일장일단”이라는 사자성어처럼.
나는 지금도 눈치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다행히도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알게 되었다.
나만의 고집과 약간의 이기심이 더해지면서
내 안에서 조화라는 것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더 나아가 이제는 그 눈치는 나를 지키는 도구로, 나를 이해하는 감각으로 사용하고는 한다.
가끔은 나의 이런 감각이 벅차기도 하지만, 눈치로
쌓은 감각이 적당한 자존감과 맞닿아 좋은 결과를
이뤄낼 때, 나는 내 마음 안에 또 하나의 작은
안전지대를 만들어 내고는 한다.
결국, 눈치는 내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먼저
가르쳐 준 첫 번째 밥상이었다.
그러니까, 눈치도 밥이다! 그것도 꽤 맛있는!
잘 먹고 잘 소화하면 그것만큼 든든한 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