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명학동의 성정
낡고 낮은 건물이 늘어선
안양시 명학역 공구거리
흘러오는 라디오 소리에 맞춰
용접밥을 밟아가는 장미다방 지영의
구두 굽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면
제일공구 김사장은 문 앞에 서
손 카메라를 들어 구도를 잡다
저도 모르게 히프를 클로즈업해주고
새마을 삼거리에서 구두 굽 소리가
안쪽으로 꺾어 들며 유난히 더 도도해지면
주유소 정실장은 그 쌔끈하게 빠진 각선미를 보며
허공에다 대고 주물러주는데
왠지 작업복에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는 효성스즈끼 쪼는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콧방귀를 껴대는 지영을 보고
저건 돌은 년이 아닐까 하고
저편에서 건너오는 그녀를 발견한 미니슈퍼 허물렁이
잽싸게 만화책 더미를 감추고 니체를 거꾸로 쥐어 들며
떡 진 머리를 우수로 위장한다
지영의 구두 굽 소리가 삼신당 깃발 아래를 지날 때
만년 백수 빡촌이 옥상에서 담배를 피며
그녀의 가슴골을 내려다 보다
지영이 가래침 뱉는걸 보고
오후를 가르는 전철 소리와 함께
야이 씨발년아 라고 소리치고 황급히 몸을 감췄다
이윽고 아래서 들리는 동네 바보 순자의 목소리가
왜이 씨발놈아
이때 지영이 순자에게 따봉을 들어줬는지
그녀가 가고 난 삼신당 맞은 편 공터에서
순자는 연신 따봉춤을 굿 소리에 맞춰 추는데
그 스텝이 하도 기가 막혀
빡촌도 흥을 맞춰 몸을 좀 비비적거리지만
동네 꼬마들이 달려 나와
순자 죽어 순자 죽어 하면서
나뭇가지로 찔러대는 통에
트위스트 판은 깨지고 대신 그 자리로
계란장수트럭이 다른 소리는 일체 없이
큰 소리로 알! 알! 을 외치고 지나가면
꼬마들도 덩달아 알! 알!
순자도 알! 알!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그 소리에
복덕방서 커피를 마시던 호랑이 아저씨가
뛰쳐나오며 야 이놈의 자식들아! 호령을 하고
짜 맞춘 듯, 꼬마들은 와! 하고 흩어진다
그제야 나는 햇살이 요란한 창가에 앉아
멈추었던 수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