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셰익스피어는 아녜스를 보자마자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아녜스 또한 그 남자의 저돌적인 사랑에 사로잡힌다. 운명처럼 조우한 두 사람은 서로의 입술을 은밀하게 탐하며 키스한다. 각자의 직업이든 계급이든 그런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오직 이름만 물으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도 급진적으로 발전해서 아녜스에게 한번에 아이가 생겨버렸다.
셰익스피어의 집안에서 그녀를 반대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 사람들도 셰익스피어같이 능력없는 샌님과는 결혼하지 말라며 말린다. 그러나 그녀는
“ 그 사람에겐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요.”
이 신념 하나로, 셰익스피어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는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시골 생활에 예술적 영감을 얻지 못하고 힘들어 했다. 그래서 그를 위해 런던으로 보내주기까지 한다.
그 사이에 아이가 쌍둥이로 둘이나 더 생겼고,
아녜스는 아이 셋을 홀로 키웠다. 셰익스피어는 그녀의 헌신 덕에 아이들을 다 맡기고
런던으로 가서 극작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아녜스와 셰익스피어의 사랑이 이 문명사회의 견지에서는 위험하고 무모하지만, 반대로 매혹적이고 대단히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냥 사랑하고 싶은 것이 사실 인간의 본능적으로 숨겨진 마음이니까.
2.햄넷은 누구인가. 아녜스는 처음엔 딸을 낳고 두번째엔 아들, 딸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중에 아들의 이름이 햄넷이었다. 첫째 딸은 건강했으나 쌍둥이 중에 딸의 몸이 유독 허약했다. 그래도 아녜스가 런던으로 가서 살자는 셰익스피어의 요구에, 도시는 공기가 안 좋아서 딸 때문에 여기 살아야 한다며 거절할 정도로 딸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 덕에 타고난 몸은 허약해도 건강하게 자라난다.
그런데 어느 날, 흑사병이 유행하게 된다.
다른 아이들은 괜찮았는데, 그 허약했던 딸이 흑사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아녜스는 죽을 힘을 다해 이런 저런 약초도 먹여보고 할 수 있는 모든 민간요법을 감행하지만
결국 딸을 살리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딸이 오늘 내일 하는 와중에…
쌍둥이 남매 햄넷이 새벽에 자신의 아픈 동생 옆으로 간다.
햄넷은 마치 죽음이 다가온 것을 창가에서 보기라고 한 것처럼 내 생명을 너에게 줄테니, 너는 살아야 해, 라는 식으로 속삭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녜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햄넷은 거의 죽어가고, 아팠던 딸의 병이 나은 것이다.
그렇게 햄넷은 고통에 몸부림 치다가 아녜스 앞에서 죽게 된다.
3.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가장 마지막 부분에 셰익스피어가 아녜스를 위해 완성한 햄릿 연극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장면이겠지만, 나는 사실 햄넷이 대신 죽음을 가져가는 저 장면이 뇌리에 남았다.
햄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명대사에 대한 답을 저 어린 햄넷이 남기고 간 것이 아닐까?
햄넷의 육신은 죽었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살아있기에, 그가 사경을 헤맬 때 미지의 세계를 걸어다니는 인간으로 형상화 되어서 나온다.
4.이는, 한 인간의 몰락만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맞서는 강한힘을 지닌다는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연극 햄릿은 아내 아녜스의 깊은 절망에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예술적 상호작용의 선상에서 해석될 뿐이지만, 햄넷의 죽음은 운명에 맞선 강인한 사랑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곧 문학보다 더 숭고하고 위에 있는 것이 한 인간의 절대적인 순수한 사랑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영화관 간 게 2024년 10월, 한소희가 나오는 폭설이 마지막.. 아직 추웠지만 오랜만에 영화관 가느라 맞는 새벽바람이 좋았다.
03 16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