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 인간의 생에 존재하는 근원적 딜레마

비평

by yina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시골 농부출신 첸토비치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B박사예요. 슈테판 츠바이크는 B박사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근원적 딜레마를 드러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첸토비치는 차가운 인간, 즉 아무것도 모르고 체스만 하는 기계죠.


그리고 B박사를 통해서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몰입하는 것, 이 두 가지 양상을 비교한 거예요. 인간에겐 그런 딜레마가 있어요. 몰입만 하다가는 인간은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몰입을 다 끝내지 않으면 인간은 굉장히 고통받아서 반드시 또 몰입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어떤 선택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체스로 나온 것이고, 실제 우리 삶으로 투영해서 보자면 예술이라던지, 사랑 같은 거 있잖아요. 그래서 몰입만 해가지고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생각만 하고 살아, 그러면 인간은 정신적으로 과부하가 되어서 결국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없게 되는 건데, 그렇다고 몰입을 안 하고 세속적인 인생만 산다? 또 그렇게만은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이 드러내는 딜레마가 있어요.

"그냥 체스에 몰입하는 삶이랑 몰입이 없는 일상의 세속적인 삶이랑 이 둘 중 하나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그런 감옥에 빠져 있다."

노장 사상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분별이 없는 자에겐 세상이 묘해 보이고 분별을 하려는 자에겐 세상이 한쪽밖에 보이지 않는다. 둘 다 나쁜 거죠? 세상이 너무 뭉뚱그려 보이거나 아니면 한쪽만 고집스럽게 보이거나 둘 다 나쁜 거잖아요. 둘 다 안 좋은 것인데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어요.

체스를 사랑으로 바꾸면 이 작품은 이해하기가 수월해요. 사실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사랑 아니면 전쟁? 보편적인 해석으로는 세계 2차 대전 전쟁으로 상징할 거예요. 먼저 사랑의 관점에서 보자면 삶의 아무런 세속적인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랑만 할 줄 아는 소수의 사이코패스적인 사람들이 존재하죠. 자기가 광적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요. 하지만 반면에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엄청난 사랑에 빠져들면 위험하잖아요. 그러다가 자기 혼자 미쳐서 나가떨어져 버리고. 첸토비치가 그 사이코 패스고, B박사가 광적인 사랑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인 거예요.

전쟁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쉬워지죠. 첸토비치가 나치, 즉 전쟁 사이코패스예요. 그리고 B박사 쪽이 나치에 맞서는 연합군 쪽. 이 해석도 들어맞는 게 첸토비치를 이기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의기투합해서 맞서 싸우죠. B박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함께 힘을 이루잖아요? 팀을 합치고. 그런데 진짜 재밌는 역사적 현실은 뭔지 아세요? 나치도 동맹이 있긴 있었어요. 나치도 나치 나름대로.
그런데 어쨌든 우리는 함께 팀을 이룬 인간적인 거고, 너네는 음 사이코패스야. 원래 전쟁하면 항상 이렇죠. B박사에게 저 전쟁광 히틀러 같은 첸토비치를 이겨달라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원래 전쟁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막상 가만히 있으면 고립되고 학대를 받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싸워야 해. 이 두 가지 감정이 존재하는 거예요.

참 신기하죠. 이 작품이 츠바이크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라는 게... B박사도 거의 자살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거든요.



" 하지만 난 평생 진정한 의미에서 체스 선수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내가 항상, 오로지 즐기기 위해서만 체스를 두었다는 의미다."

(체스 이야기에서 B박사 말고 첸토비치에 처음으로 맞서는 1인칭 화자가 하는 말. 이 구절이 나온 뒤에 지옥 같은 고독 속에서 체스에 과몰입했던 B박사가 등장한다. 그러면서 이 구절과 B박사의 광기가 대립되어 보인다.)

츠바이크는 사랑, 그리고 전쟁, 예술에 자신의 영혼을 광적으로 갈아 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진정으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자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오히려 연민의 시선으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숭고하다고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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