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이의 성장을 바라보기

한 사람의 삶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2년전 쯤, 상담현장에서 만났던 아이.

많이 힘들었던 상태로 나를 만났었다. 말은 많이 없었지만 눈물은 많았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캄캄한 지하에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기에 회복과 무너짐을 반복되는 것 같았다. 아래글은 4개월여의 기간동안 상담을 마치고 센터에서 상담 수기집에 냈던 글이다. (내담자에게 허락을 받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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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하고 따뜻한 봄 날, 모든이에게 비춰주는 햇살이 자신에게는 상관없는 듯 눈이 잘 보이지 않게 검은 모자를 눌러쓴 고등학생을 만났다. 예쁜 글씨와 차분한 모습. 공손함까지 보이는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3년전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아버지는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셔야 했고, 결국은 돌아가셨다. 그 과정에서 고향과 같은 거제도를 떠나 고양시로 이사를 오게 되는 등 급격한 환경의 변화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졌고 결국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아 고등학교에서 자퇴를 했다. 이미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가 와서 가발을 써야 할 정도라고 했다.


내담자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딸바보라 여겨질만큼 엄청 이뻐했다는 아빠.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아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 방학에는 꼭 수능공부를 해야 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대학을 가는 것이다, 10년 뒤에는 돈을 벌고 싶다는 등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이야기에 귀기울여 들으면서도 사별에 대한 슬픔도 가시지 않았을 어린 아이가 무엇이 미래를 고민하게 했을지.. 중학생 때 자신을 왕따시켰던 아이에게 복수하는 길은 대학가서 돈을 잘 버는 것이고 잘 살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지금의 힘든 시간을 빨리 벗어 날 수 있는 길은 열심히 공부해서 돈을 벌어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이 망상장애 환자 같다면서 인터넷에서 자신의 증상과 같은 병명을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낮선 환경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쉽게 움직이지 않는 성향에다가 의존적인 기질은 타인의 이야기에 쉽게 흔들렸다. 게임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들었던 모든 이야기들은 거부하기 쉽지 않았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것이 나에게는 마치 관심과 사랑처럼 느껴져 끊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와의 가끔 있는 드라이브가 내담자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그러던 엄마도 힘든 딸과 24시간 같이 있는 것이 버거우셨는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내담자는 엄마가 안 계시니까 내가 잘 해야지라고 하며 버텨내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현실은 잘 되지 않았다. 그 결과 다시 좌절하게 되고 우울의 늪으로 빠졌다. 반복이었다.


상담자인 나도 낙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변화되는 것이 없어보였고 나아질 수는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때 동료 상담자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상담자마저 그 사람을 포기하면 그는 회복할 기회를 어디서 얻겠냐고. 정신을 차렸다. 다시 힘을 내서 끝까지 견뎌내야겠다고.


그러던 어느 날. 상담을 시작한지 3개월 즈음이 지난 날. 게임을 안 하겠다고 했다. 갑자기?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했냐고 했더니 게임이 지겹기도 하고 힘드니까 일어서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때마침 엄마가 일을 그만두셔서 집에 같이 계시니 마음에 안정이 되었다고. 처음이었다. 내담자의 입에서 이런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좀 더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마음의 지도가 달라지고 있었다. 자신이 초등학교 때 글을 써서 입상을 자주 했었던 경험을 이야기 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고도 했다. 처음에도 했었던 이야기지만 공허한 외침으로 들리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오랜만에 앉아서 공부하려니 쉽지 않다고도 했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공부했던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오래지 않아서 다시 페이스를 찾았다.


하루는 학교밖센터에서 검정고시 모의고사를 본다고 해서 센터에 가려는데 가기 전까지 죽을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 그리고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 예견 등을 이겨내고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내담자는 이겨냈다. 분명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되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았다. 고득점을 받고 웃는 얼굴로 만난 내담자는 수능공부 계획과 미래 계획을 얘기하며 돌아갔다. 문제는 그 다음 주. 돌아가신 아빠의 기일이어서 납골당에 다녀와 다시 우울이 찾아왔다. 아빠에 대한 생각에 눈물이 나서 한 주간 너무 우울했다는 것이었다. 검정고시를 잘 보면, 검정고시가 끝나면 모든 게 다 변해있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틀리기도 했다. 외부환경은 그대로 였지만 내부환경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담자에게 그동안 있었던 변화를 얘기해주었다.

“너는 이미 달라졌단다”


내담자는 금방 다시 일어났다. 이제 힘이 생긴 듯 했다. 힘들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근육이 붙은 것 같았다. 종결을 제안할 때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본인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소년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변화를 종종 경험하곤 한다. 나는 이것을 ‘드라마틱한 변화’라고 말하고 싶다. 믿어주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사람은 기어코 변하고야 만다.


종결 후 몇 달이 지나, 센터에서 회의를 하러 왔다 우연히 내담자를 만났다. 학교밖센터에서 바리스타 자격과정을 하고 있다면서 만날 줄 알았으면 커피 한 잔 타드릴 걸 그랬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모습이 참 반갑고 고마웠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보석 같은 사람으로. 삶을 살아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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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가끔은 연락하며, 필요할 때는 전화로도 상담을 했다. 여전히 힘듬은 있었지만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이제는 몇달에 한번씩, 가끔 연락이 온다. 이런 저런 도전들을 할 때마다 연락을 하는데 그 때마다 아이의 인생을 응원하게 된다.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잘 안 되고 있는데 그 실패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을 하든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이 이리도 변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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