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이야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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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 간호사 다은은 새로 입원한 환자의 소지품 검사를 하고 난 후 환자가 자신의 돈 3천만원을 훔쳐갔다며 집요하게 따지고 호통치고 병동 온 벽에다 낙서를 해 놓는다. 머리채까지 휘어잡지를 않나 무릎을 꿇지를 않나 심지어 다은쌤 사물함까지 뒤진다. 환자의 상황은 이해하지만 계속 당하기만 하는 다은쌤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런 다은쌤에게 윤보호사가 옆에서 중요한 한마디를 던진다.

"환자의 말을 듣지 말고, 그 사람의 말을 들어줘요"


어제 상담실에서 만났던 청년이 생각났다. 상담 마지막 회기여서 말미에 그동안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과 변화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제 이야기가 길었는데도 끊지 않고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듣는 일'은 나의 직업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이 경험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리라.


사실 '경청'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사용하지만 진짜 경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원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 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대답해줄 말을 생각하거나 내가 할 말을 찾고 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내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호사의 말을 듣고는 뭔가 마음의 변화를 느낀 다은쌤은 끼니를 계속 거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컵라면 두개를 끓여 병실로 간다. 라면을 앞에 놓고 지하 단칸방에서 라면을 반개씩 끓여 먹던 그 때가 생각났는지 환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그림처럼 그 사람의 삶이 그려진다. 왜 이렇게 삶이 무너졌는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는지,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이해가 된다.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고와 문제, 아니 꼭 부정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행동에는 행동 이전에 그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사건과 행동이기에 그것과 대면해 수습하고 해결할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행동을 멈추고 바로잡는 것 보다 그 사람이 왜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를 함께 바라봐 주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어제 만난 청년에게 그랬던 것 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옆에 머물러 주는 일 말이다. 이야기가 흘러갈 때,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 너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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