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때문에 출근하고, 사람 때문에 퇴사한다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일보다 어려웠던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업무는 배워서 해결할 수 있지만,
관계는 마음이 맞아야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이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친절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관계의 복잡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직장은 다양한 성향이 부딪히는 작은 사회였고,
그 속에서 나는 때때로 혼자가 되곤 했다.
누군가의 말투 하나, 표정 하나가
유난히 크게 다가오는 날이 있었다.
그 작은 것들이 내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곤 했다.
직장 내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예민한 균형 위에 놓여 있었다.
특히 나를 지치게 했던 것은 ‘반복되는 상처’였다.
비슷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라 패턴이 되었다.
그 패턴이 이어지면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방어적으로 굳어버리기 마련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출근 전 회사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일이 아니라 사람이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때부터 회사 생활은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관계를 견디는 곳’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관계의 벽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작은 오해가 쌓이고, 불편한 감정이 굳어지고,
정리가 안 된 말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나는 그 벽을 넘기 위해 애썼지만,
오히려 벽이 점점 더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일의 의미까지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보다 그 일을 함께하는 사람이
더 큰 영향을 미칠 때가 많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관계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 구분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너무 오래 매달렸던 적이 있다.
문제는 내가 노력하는 만큼
상대도 변화하리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은 훨씬 더 깊어졌다.
그 실망이 쌓이면서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지점으로 나아갔다.
‘사람 때문에 출근하고, 사람 때문에 퇴사한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직접 경험하며 이해하게 되었다.
좋은 동료가 있는 날은 힘들어도 출근이 가벼웠다.
하지만 갈등이 깊어지는 날은
회사 문 앞에 서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직장 내에서 반복되는 갈등은
나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가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게 된다.
그 질문에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답을 하게 될 때
마음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시간을 꽤 오래 지나왔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수년간 쌓인 긴장감이 어느 순간부터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지치게 만들었다.
심리학에서는 ‘관계 소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감정적 자원이 바닥나고,
상대와 마주하는 것만으로 피로가 몰려오는 상태이다.
나는 그 단계에 이미 깊게 들어와 있었다.
처음에는 이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졌다.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 생각은 두려웠지만 동시에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떠남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을 선택하는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무시하다가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 지점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찾아오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더 이상 이 관계 안에서는 내가 회복될 수 없다’는 확신이다.
나 역시 그 확신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확신이 생기자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정리는 퇴사를 향한 준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의 준비였다.
떠난 뒤 돌아보면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관계가 지금의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상처 덕분에 나는 더 현명한 기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회사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공간이라는 것을.
좋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힘들어도 버티게 되고,
나쁜 관계가 자리 잡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도 무너진다는 것을.
결국 관계의 벽에 부딪힐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다.
이 관계가 나를 더 아프게 하는지,
아니면 회복 가능한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면
새로운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건강한 길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