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미힐미:치매의 다변성
“내가 좀 전에 로션 발랐나?”
“네”
“아 발랐구나”
5분 후
로션을 들고 내 방으로 오신다.
“내가 로션 발랐나?”
“응 엄마”
”아~발랐구나 “
“너거 아부지가 아인나, 내를 이리 끌어 당기가 싹 잡아채니까 내가 뒤로 나자빠졌다 아이가. 아이고 몸서리 난다!”
“엄마, 그때 왜 그랬는데?”
“내가 그 말 90번만 더하모 백번이다 했다고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쳐들길래 도망가다가 아파트 문을 빨리 못 열어서…”
내가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대략 30여년전의 일이다.
역대급 부부싸움이었다.
나도 기억이 생생한 일이다.
통영에서 서울로 오는 6~7시간 동안 엄마는 운전하는 내 옆자리에 앉아 단골메뉴인 이 이야기를 하신다.
나는 아마 족히 50번은 더 들은 것 같은 이야기이다.
엄마의 기억에 박혀있는 그때의 장면은 앙코르영화처럼 계속 상영되고 있는 것 같다.
“엄마 이제 그 이야기 좀 그만해라. 나는 한 50번은 들은 것 같다”
“내 방금 무슨 이야기 하드노? “
“아부지가 엄마 때린 이야기”
“아~ 그 말 하드나”
경도인지장애였던 엄마는 이제 점점 ‘경도’라는 글자를 떼 버리려고 하시는 것 같다.
최근에 혼자 계시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근처 데이케어센터에 다니게 해 드렸다.
너무너무 신나 하신다.
처음에는 거기 사람들 영 바보 같다고 가기 싫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세끼 밥도 주는 그곳이 편한 것 같았다.
마치 어린이집에 내 자식을 보내는 느낌이다.
이제는 내가 보호자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때로는 서글프다.
센터에서는 마치 어린이집같이 활동한 사진들을 카톡으로 보내주신다.
게임에 임하는 우리 엄마의 눈빛은 승부욕으로 가득 차 있다.
열심히 재밌게 하신다.
특히 노래교실이 있는 날이면 가장 밝게 웃으면서 신나게 춤을 추신다.
이런 엄마의 모습이 참 낯설다.
형제들에게 엄마의 사진을 보내주니
‘우리 엄마 맞나?’라는 반응이 온다.
“이제 예전의 엄마는 찾기 어렵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나를 안아주고 돌봐주고받아주던 엄마는 이제 점점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엄마는 어린시절로 돌아가시려 하는 것 같다.
조금만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짜증을 내신다.
2월말에 아무리 눈이 오고 영하의 날씨가 되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아무리 실내온도를 낮추고 시원하게 해도 여름의 볕은 따갑고 강렬하다.
세월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엄마가 아빠가 나를 끝까지 돌봐주시면 좋겠는데…
세월이 가니 부모님도 점점 늙어가시고 이제는 돌봐드려야 하는 때가 오고 말았다.
어린아이 같이 밝고 이쁜 우리 엄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