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트의 올드시티와 페즈
라바트는 참 아름다운 정원도시와 같다. 모로코의 국왕이 살고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도로에 나가면 잔디에 물을 주는 공무원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름다운 벤자민나무가 서로서로 연결되어 마치 동화 속 거리를 지나가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가로등도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엘레강스한 곡선 장식이 달려 운치가 있다. 도시 전체가 궁전의 일부 같은 느낌이다. 산 마을에 다녀온 다음 날, 우리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진 호텔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다들 기분이 좋아 연신 셔터를 눌렀다.
고요하고 화창한 날씨라 사진은 더 잘 나오는 것 같았다.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호텔 구석구석을 누비며 장식한 것들을 구경했다. 카메라만 들이대만 잡지에 나오는 사진 같이 잘 나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람들이 피는 담배였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 아름다운 정원에서 담배를 피워댔다. 휴식을 망치기에 딱 좋은 냄새였다.
적당한 휴식을 취한 후 올드시티로 향했다. 북아프리카 서쪽에 있는 모로코는 대서양과 접한 곳이다. 흰색과 청색으로 색칠되어 있는 마을과 바다 옆에 붙어있는 성곽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왔다. 유명한 곳인지 관광객이 많았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동양인인 우리를 보며 이것저것 말을 붙여온다. ‘니하오’.
‘안녕하세요. 아임 코리안’이라고 하니 아이들이 눈이 더 동그래진다. ‘No BTS? No BLackPink?’라고 확인한다. 그래 이 녀석들아 난 BTS도 아니고 BlackPink도 아니란다.
자기들끼리 웃고 신기한 듯 쳐다보고 갈 길을 간다. 우리 일행은 올드시티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흰색과 청색, 그리고 잘 어우러진 대서양의 하늘을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기념품도 샀다. 그 후에 길을 건너 정말 관광객을 위한 시장으로 향했다.
산골 마을에 봉사를 갔을 때와는 다르게 우리 일행의 눈은 아름다운 것들에 취해 있었다. 시장으로 들어가니 기념품으로 살 만한 것들이 즐비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아름답게 페인팅되어 있는 나무 티테이블을 샀다. 어떻게 들고 다닐 거냐는 말에 당연히 잘 들고 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다른 분도 비슷한 티테이블을 하나 샀다. 몇 달이 안되었는데도 얼마를 주고 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행 후기는 여행이 끝나자마자 바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가죽 슬리퍼에 꽂혔다. 우리 4명의 여자들은 그 집의 신발들을 거의 다 신어본 것 같다. 각자 양가죽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슬리퍼를 하나씩 사서 신나게 숙소로 돌아왔다.
모로코에도 우버 같은 택시가 있어서 어플(인드라이브)을 깔고 그것으로 택시를 부를수 있다. 아랍어나 프랑스어가 되면 훨씬 수월하게 이용했겠지만, 할 줄 아는 게 한국말과 영어라서 택시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택시가 우리의 위치를 찾지 못했다. 나는 주변에 있는 조금 똑똑해 보이는 모로코 남자에게 눈빛으로 전화를 받아서 이곳을 설명해 달라고 외쳤다. 친절한 모로코인은 아랍어로 택시기사와 엄청 길게 통화했다. 그리고 택시가 올 때까지 우리와 함께 서 있어 주었다.
그 모로코 남자가 건넨 말은 딱 한마디였다. “can you speak French?”. “No”. 서로는 아쉬운 표정으로 눈치로 대화했다. 택시를 부르는데 30분은 더 걸렸던 것 같다. 그래도, 친절한 아랍사람들로 인해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이 날 샀던 신발은 모로코에서는 엄청 세련되고 예뻐 보였다. 곱게 잘 싸서 여행 가방에 넣어놨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방을 열었는데 모로코의 익숙한 꼬리꼬리한 냄새가 내 가방에 가득했다. 세련된 양가죽 슬리퍼에서 나는 냄새였다. 아직도 그 신발에서는 모로코의 냄새가 가득하고 한 번도 신어보지 않고 신발장에 그대로 있다.
다음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죽의 도시 페즈로 향했다. 라바트에서 기차로 약 3시간 걸리는 곳이다. 기차표를 예매하는데 1등석을 하겠냐는 말에 1등석은 왠지 우리나라 ktx의 특실 같은 느낌이라 2등석을 예매했다. 2등석은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그런 칸칸이 된 기차인데 양쪽으로 마주 보는 좌석에 5명씩 총 10명이나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자기 자리도 아닌데 비어 있으면 앉았다. 그 바람에 칸칸은 더욱 혼잡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젊은 여인은 자신이 예매한 자리를 찾았다. 그 자리에는 어떤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모로코인들에게 경로우대는 우리나라보다 더 뛰어난 것 같았다. 그 아기 엄마는 아기를 안고 있으면서도 괜찮다고 자기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할아버지도 고맙다는 표정으로 그대로 앉아 거의 한 시간을 갔다. 먼저 예매했고 장거리이니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법도 한데 이들은 서로를 그렇게 배려해 주었다.
새벽 6시에 출발한 기차는 9시 즈음에 페즈에 도착했다. 우리는 기차역 2층 카페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페즈의 올드시티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왕의 별장 같은 정원에 들어가서 사진을 엄청 찍었다. 나무와 화초들이 잘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곳이었다. 큰 광장을 가로질러 꼬불꼬불 미로와 같은 곳에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라바트와 달리 페즈는 날씨가 엄청 더웠다. 우리는 아기자기한 모로코의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좋은 가격의 가죽벨트와 수공예용 천을 흥정하며 샀다. 시장 안쪽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거하게 점심 식사를 했다. 미리 리서치하지 않았지만 그냥 좋아 보이는 곳에 들어갔는데 성공이었다. 이것저것 기념품을 사면서 골목골목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기차시간이 다 되어 갔다. 우리는 빨리 테너리(가죽염색하는 곳)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떤 모로코인이 이곳으로 가면 테너리가 잘 보인다고 했다. 가장 큰 곳을 가려했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냄새는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올라가는 계단 앞에 애플민트를 한 뭉치씩 손에 쥐어 준다. 이걸 코에 대면 냄새가 그나마 괜찮다고 했다. 냄새의 정체는 비둘기 똥이었다. 가죽을 비둘기 똥으로 연하게 만든 후에 염색을 한다고 했다.
냄새 때문에 역겨운 비명을 지르자 직원 한 명이 나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8월에 왔어야 한다. 그러면 더 진한 쿠쿠샤넬(비둘기 똥의 향기)이 진동했을 것이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로코의 가죽도시를 방문하고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으로 오는 길이 여기저기 막혀 있다. 경찰이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축구시합을 하는 날이란다. 모로코의 축구사랑은 거의 축제 분위기처럼 엄청났다. 대부분 도시의 택시에는 운전사를 포함하여 딱 4명만 탈 수 있었다. 우리는 5명이었기에 택시 2대로 나누어 타고 들어갔었다. 기차역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래서 약간 큰 다마스 같은 차에 5명이 한꺼번에 탔다. 이렇게 길이 막히니 택시를 따로 탔으면, 기차를 놓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정말 다행이었다.
이번 모로코 여행은 짧은 일정이었다. 알차게 이곳저곳을 잘 돌아보고 만날 사람을 잘 만났다. 마지막 날은 라바트에서 가장 큰 까루프에서 쇼핑을 했다. 한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로코를 이렇게 다녀오게 되었다. 모로코의 자연, 하늘, 정원, 구름, 사람들 같은 잔잔한 여행의 감흥이 아직도 남아있다. 페즈에서 산 파란색 도자기 찻잔은 나의 욕실에서 양치컵으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