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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쓰기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진짜 좋아하는 것과 guilty pleasure의 차이

by 보니

내가 쓴 글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이런 걸 글이라고 썼어?'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자꾸 올라온다.

'내가 책을 쓰기는 무슨…'


책을 쓰기 위해 주제를 어떻게 잡는지 배웠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딱히, 내가 잡은 주제가 마음에 안 든다. 쓰려하니 글이 산으로 간다. 내가 말하려는 건 이게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쓰려고 하는게 뭔지도 정확히 파악이 되지도 않는다.

밤새도록 떠들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다. 밤새도록 떠들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그런 이야기를 사람들이 읽을까?


내 주변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책을 만든 친구도 있고, 규장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3편이나 낸 선교사도 있다. 비교의식이 콩나물 자라듯이 쑥쑥 자란다.

3년간 끊임없이 글을 썼다던 @동그라미 원작가는 브런치 누적방문자가 38만이고 블로그도 50만이 넘는단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나도 부지런히 쓰면 다음 포털 메인에도 노출이 될 줄 알았다. 꿈도 야무졌다.

처음엔 내가 쓴 글이 마음에 쏙 들었다. 자뻑이었다.

‘재밌다. 잘 쓴다’는 피드백만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꾸준히 하라는 말인 줄 몰랐다.


@동그라미 원작가는 그냥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했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나는 ‘꾸준히’라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에 꽂혔다. 나는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 글쓰기를 정말 좋아할까? 아니면 하소연이나 나의 심리치료를 위해 쓰고 있는 걸까?


초등학교 2~3학년 때쯤인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흥부전을 연속극형식으로 인형극으로 보여준 적이 있었다. 어릴 때라 인형극이 신기하고 참 재미있었다. 요즘처럼 넷플릭스가 있거나 유튜브가 있을 때가 아니니 그저 텔레비전이 유일한 볼거리였다. 인형극 흥부전을 초집중 상태로 보았다.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예전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가끔씩 이야기해 볼 사람 나와서 해 보라고 선생님이 시간을 줄 때가 있었다. 나는 교탁 앞에 서서 내가 본 흥부전 이야기를 신나게 했었다. 지금도 그때 상황이 생각난다. 인형극에서 본 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했다. 나의 머릿속에는 인형극 필름이 돌고 있었다. (어릴 때는 기억력이 거의 사진 수준이었다.)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해서 선생님께 그만할까요?라고 물으니 계속하라고 했다. 반 아이들도 계속해달라고 했다. 조그만 여자아이 목소리가 교실 벽을 넘었다. 다른 반 아이들이 누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구경하러 온 것도 기억이 난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보거나 들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사람인 것 같다. 재미있게 전달한다고 하는 소리들을 많이 들었다. 나의 말에 영향력이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 쯤되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약간은 파악이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위로로 내가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내게 확언해 주었더라도 내가 스스로 나를 믿지 못한다면 위로와 확언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한 것을 발견해야 한다. 나는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피곤해도 끝까지 하고 싶어 하는지.

나이가 오십이 훌쩍 넘고, 하던 일도 그만둔 이 마당에,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온몸을 비비 꼬고 있다. 마치 탈피를 하는 뱀처럼 나 스스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잠이 와도 눈을 비비가며 게임을 하고 있는 나는 게임을 진정으로 좋아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허무한 나 자신을 달래기 위해 자기 전에 주는 guilty pleasure(죄책감 느끼는 즐거움, 예를 들면 다이어트를 하려 하면서도 초콜릿을 즐겨 먹는 것) 같은 것일까?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기 발견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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