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란젓

생각 습관

by 보니

오랜만에 이마트에서 새벽배송으로 장을 봤다. 평소 새벽배송 주문할 때는, 세일하는 물품위주로 무료 배송 금액 기준까지만 장을 보곤 한다. 한 푼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문 앞에 와 있는 새벽배송이 혼자 사는 나에게는 딱이다. 새벽에 온 물품을 냉장고에 넣고 박스는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에 나중에 버릴 요량으로 베란다에 두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눈으로 얼룩진 자동차를 세차하고, 워셔액을 사서 넣었다. 일주일 지난 재활용쓰레기도 같이 버리려고 들고 쓰레기 장으로 갔다. 플라스틱을 먼저 분리하고 종이를 버리려고 이마트 배송 박스를 열었다. 비닐을 먼저 분리하고 나니 박스 밑에 또 은박 비닐이 보였다. 뭐지? 얼음봉지인가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은박 비닐을 뜯었다. 아주 얇은 작은 박스가 손에 잡혔다.

꺼내 보니 명란젓이었다!!!

내가 주문해 놓고는 깜빡했다. 제대로 보관도 못하고 베란다에서 쓰레기와 함께 일주일이나 있었다.

아놔~! 난 왜 이러는 거야! 이상하게 결재한 금액 치고는 장본 물건이 너무 적다 싶었지만, 물가가 올랐으니까 로 넘겨짚었다.


이 명란젓을 버리기 아까워, 다시 들고 집으로 왔다. 열어서 냄새가 심하게 나면 그때 버릴 요량이었다. 다행히 일주일간 날씨가 영하권이었기에 약간 기대했다. 명란젓의 비닐을 뜯었다.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바로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알탕을 만들어 버렸다. 오래 두면 결국 상하고, 지금 상태에서 끓이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었다. 김치명란 알탕을 나 혼자 3일간 먹었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 비닐을 뜯어서 보지 않고 그냥 버렸다면, 돈이 어디에서 세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살았을 것이다. 없다고 아껴야 한다 생각하며 살고 있다.

박스아래 깔려있던 명란젓을 발견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색함은 진짜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서 없다 없다 하면 더 가난하게 되는 것 같다.

명란젓은 필수 음식은 아니었다. 비싸서 잘 사 먹지도 않는 부류였다. 좀 고급진 것을 먹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난하다는 마음 때문에 더 생기는 것 같다.

먹고 싶은 것 먹고, 주문한 것 잘 챙기고, 음식 상해서 버리는 것만 없어도 알뜰하게 사는 삶이다.

없는 게 아니라 잘 관리하지 못하는 거였고, 가난한 게 아니라 마음이 쫄았던 거였다.

수입이 줄어도 당장 굶어 죽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냉장고에는 언제나 음식이 있고, 옷장에는 입을 옷이 있다.

눈은 마땅히 봐야 할 곳을 봐야 하고, 마음은 쫄지 말고 잘 다잡아야 한다.

쫄지 말자! 당장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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