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후기(스포 있음)
흑수저 금수저 콘셉트로 전 국민에게 관심을 끄는 요리대결이 펼쳐졌다.
유명한 호텔 주방장부터 시작해서 전국 방방곡곡 맛집 사장까지 모여 경연을 펼쳤다.
파이널 라운드에는 딱 두 명만 생존했다.
마지막 요리대결의 주제는 '나 자신을 위한 요리'이다.
셰프들은 자신을 위해 요리하지 않는 사람이다. 평생 고객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자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스토리가 담겨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흑수저인 요리괴물은 20살 때부터 미국으로 가 온갖 고생하며 지금 자리에 온 인물이다.
파인다이닝(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그는 화려한 기술과 자신만의 스토리로 아름다운 요리를 완성했다.
어릴 때 목욕탕 다녀오면 아빠랑 먹었던 순댓국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디쉬로 만들어 냈다.
백수저인 최강록세프는 마스터세프코리아의 우승자다.
그는 종종 tv에 내성적인 사람으로 나왔다. 말도 많이 하지 않을뿐더러 겨우 내뱉는 듯이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조림인간으로 유명하다. 마스터세프코리아에서도 조림요리로 우승했다고 한다.
조림핑, 연쇄조리마, 조림인간 등 별명도 다양하다.
그는 최종 단계에 오르기까지 계속해서 다양한 조림요리를 선보이며 올라왔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라고 하니 조림에서 벗어나려 했다. 우승이고 뭐고 진짜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연시간의 3분의 1을 깨두부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일본식 두부요리인데 불조절을 잘해서 끊임없이 저어주어야 하는 요리다. 그리고는 얼음에 굳혔다가 적당한 시간에 꺼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는 각종 감칠맛이 나는 국물을 만들어, 자신이 만든 깨두부와 자기가 좋아하는 각종 재료를 넣은 국물요리를 만들어 냈다.
그는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다고 했다. 조림을 위해 열심히 연구도 하고 공부도 했단다. 예전의 경연대회에 나가서 우승하기 위해 100번도 넘게 만들어 봤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요리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국물에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 마음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척’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우승을 다투는 자리에서 화려한 테크닉과 멋진 조림을 보여줄 수 있지만,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자기가 위로받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수고했다. 조림인간! 오늘 만큼은 쉬어라."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에 소주 한잔을 곁들였다.
척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지?'
아버지가 사준 순댓국도 잔잔한 감동이 있는 스토리였는데
자기가 척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만든 자신을 위한 국물요리가 더 감동적이었다. 나이가 50 중반을 향해 가니 척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마음에 진실하게 다가왔다. 얼마나 많은 '척'을 하고 살았는지.
아는 척, 이해하는 척, 모르는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멀쩡한 척, 돈 많은 척, 때로는 가난한 척, 못 들은 척, 못 본 척, 잘난 척 등.
이런 척에서 벗어나 진실한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용기가 감동이었다.
심사위원이 버튼을 누르는 시간 동안 나도 같이 두 손 모으고 바라봤다.
진실함이 화려함을 이겼다.
솔직한 마음이 담긴 요리가 화려한 테크닉으로 곱게 만들어낸 순댓국을 이겼다.
아직 세상은 진실함이 통한다는 생각에 감동이 더했다. 어떤 화려함보다 진실한 마음이 사람에게 더 다가가는 듯했다.
사람의 참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있지 않다. 처음 볼 때는 그 화려함에 눈이 간다. 그러나 맛을 보게 되면, 진실한 맛에 더 매료되는 것이다. 나를 잘 보여줄 만한 것을 외부의 화려함이나 치장으로 삼지는 말아야겠다.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화려함이나 치장에 눈이 가기는 한다. 화려함에 매료되고 그 맛에 취해서 본질을 보지 못할 수 있다. 화려함은 시간이 지나면 눈에 보이지 않고 사라진다. 내면의 성장과 성숙, 그로 인해 맺히는 삶의 열매가 진짜 맛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도 진실한 사람이 찐이다.
포도나무로 삶을 비유해 보면,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있으면 좋아 보인다. 화려한 모양에 눈이 간다.
그런데 그 포도가 신맛이 나는 맛이 없는 포도라면 포도송이는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혹은 맛을 보고는 버릴 수도 있다. 아마 으깨어 포도주를 만들거나 잼을 만들 수도 있겠다.
포도에 과즙이 풍부하고 단맛이 난다면 좋은 포도이다. 인생도 이런 포도가 많이 열리고 풍성하다면 함께하는 주변사람들도 풍성하게 될 것이다.
혼자 잘 되는 일은 드물다. 내가 잘되면 주변인들도 좋아진다. 겉치레가 아닌 내면의 진실함, 내면의 풍성함이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참 맛을 보게 하고 감동을 주고 기쁨을 줄 것이다.
내면을 가꾸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는 독자들의 선택이다. 최강록 세프처럼 자신에게 자유를 줄 수도 있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겉모양도 좋아진다.) 등등.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가 끝나는 날에는 자신에게 '수고했다. 오늘 만큼은 쉬어라!'라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