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알레르기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이다. 세월이 참 빠르게도 흘러간다.
만성신부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소망 없는 소리를 듣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몸이 약하니 이런저런 염증반응과 감기를 달고 살았다.
신장기능이 좋지 못하니, 약도 일반 약국에서 사 먹지 못했다. 감기약마저도 신장내과에서 처방해 주는 약만 복용할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네 병원이나 의사가 꺼리는 환자가 되어 버린 셈이다.
내가 난동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을 안 듣고 약 복용을 맘대로 하거나 안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 병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날도 감기에 걸려, 신장내과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그나마 약을 처방해 주니, 고통에서 벗어나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새로 처방해 준 감기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자다가 한쪽 팔이 벌레 물린 듯 간지러웠다. 모기가 물었나 하며 그냥 잡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한쪽 팔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 있었다. 깜짝 놀라 병원에 전화했더니, 의사는 미안하다는 말대신 주사 한 방 맞으면 괜찮아질 거라면서 그 약 먹지 말라고만 했다.
조금 억울했지만, 알레르기는 의사도 모르는 일이고 나도 몰랐던 일이니 뭐라 따지지도 못했다.
그 사건 이후 의사는 내 차트에 큰 글씨로 OOO약에 대한 알레르기라고 표기를 해 놓았다.
몇 달이 지났다. 내 주치의가 휴가를 갔는지 다른 의사가 진료했다. 그때도 감기에 걸렸고, 약을 처방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처방전을 들고 가다가 잠시 훑어보았다.
내 눈에 익숙한 항생제 이름이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처방전을 들고 신장내과로 향했다.
마침, 나를 진료한 의사가 진료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여기 이 OOO은 제가 알레르기가 있는 약이에요."
"아 그래요? 큰일 날 뻔했네." 하더니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약만 바꿔서 처방했다.
나는 의사 면전에 대놓고 말은 못 하고, 뒤로 돌아서면서 혼잣말을 크게 했다.
"거기 차트에 크게 적혀 있을 건데."
몇 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서울의 큰 병원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였다.
원인 모를 하혈로 시술을 하게 되었다. 수면마취 시술이라 아침부터 간호사가 몇 가지 조사했다. 시술을 자주 하게 되어 나는 신경이 날카로웠다. 아침 일찍 시술받으러 가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내 건강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싶었다. 알레르기가 있다. 진통제 처방은 신장내과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이 있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니 전화해서 물어봐 달라라고 까지 말했다.
간호사는 알았다고 했고, 나는 안내에 따라 시술을 받고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결혼도 안 해봤는데, 이런 시술을 수차례 받으니 내 처지가 딱해 눈물이 절로 나왔다. 눈물 흘리다가 이제 퇴실하라고 간호사가 안내해 주었다. 잠시 내 얼굴을 봤다. 권투선수한테 맞은 것 같이 퉁퉁 부어있었다. 울어서 부었다고 하기엔 너무 많이 부어 있었다.
수면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있지 않아 몽롱했지만, 나는 간호사에게 내 얼굴이 왜 이런지 물었다.
"어~! 얼굴은 원래 그러셨는데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내 얼굴이 원래 이렇게 맞은 거처럼 부었다고?
쓰지 말라고 한 진통제를 준거 아니냐고 내가 물었더니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따박따박 따졌다. 내가 수술 전에 분명히 주의사항이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으니 신장내과에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말을 안 한 것도 아닌데 지금 이 얼굴이 원래 이렇다고 말하는 게 말이 되느냐. 내가 왜 이런 큰 병원에서 시술받겠느냐. 이렇게 서로 협조가 안되는데 내가 어떻게 믿겠느냐.
회복실에서 언성이 높아지자 수술 전 나에게 질문했던 간호사를 불렀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를 배웅해 주면서 잘 회복하라고 달래서 나를 보냈다.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아래층에 있던 신장내과를 바로 찾아가 내 주치의를 만났다. 주치의도 진료를 끝내고 막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주치의는 차트를 잠시 살펴보더니 쓰지 말라고 한 진통제를 썼다고 하면서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냥 약물이 빠져나가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하루 정도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속상했다. 실수에 의한 피해는 내가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울면서 지하철 타고 서울역으로 가고 있었다.
신장내과 주치의가 나에게 전화했다. 집에 가는 길이냐고 묻더니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신장내과에서 진료를 잘 본다고 소문난 명의였다. 산부인과에서 잘못한 걸 신장내과 의사가 환자에게 친히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나는 병원 불만 상담실을 찾아가려고 했었다. 그래도 환자를 살리려고 돕는 의사에게 모진 소리하는 것 같아서 그냥 참고 나왔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병원비라도 돌려받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용기는 없었다.
진짜 오랜만에 눈에 다래끼가 생겼다. 요즘 피곤했는지 지난주에는 입술 포진이 나더니, 이번 주에는 눈가가 아팠다. 아침에 눈곱으로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안과에 갔다. 바르는 안약연고와 안약을 주었다. 세균이 침입해서 염증이 생겼으니, 무리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쉬라고 했다. 증상이 없어도 이 연고와 안약은 10일은 발라야 한다고 말했다. 다래끼가 크게 곯지 않아 초기에 잡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안심했다.
병원에 다녀와 점심을 먹은 후 안과에서 처방받은 항생제 안약을 2방울 넣었다. 그리고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입술이 좀 이상하다. 약간 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약 설명이 있는 봉투를 다시 보았다.
아뿔싸! 그 OOO계열 항생제였다. 안약 딱 2방울이었는데. 이리도 민감하다니.
안과에 다시 갔더니, 예민한 사람이니 항생제 없이 버텨야겠다고 말한다. 이식 수술도 했고 알레르기도 있으니 딱히 처방해 줄 약이 없나 보다. 예전처럼 붓고 가려운 증상이 생기기 전에 중단할 수밖에
마음 한쪽에서 '나도 참 별나다 별나'라는 소리가 들리지만, 애써 꾹 참고 그 소리를 눌러버린다.
나는 별난 게 아니야. 특별한 거야. 괜찮아 버티고 견디면 돼! 다래끼는 손 깨끗이 씻고, 잘 자고 잘 먹으면 낫는 거야.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나에게 악플을 달고 싶지 않다. 살다 보면, 약해질 때도 있고, 약이 안 맞을 때도 있는 것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살 수 있는 집이 있고,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으면 좋은 거다.
나는 오늘도 나를 칭찬한다. 나에게 선플을 달아준다. 모진 고난에도 잘 이겨왔어. 총기 있게 알레르기 있는 약을 잘 찾아냈어. 오늘도 잘 쉬고 피곤한 몸을 잘 달래고 있어. 훌륭해.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
굳이 찾지 않아도 잘못하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눈에 너무 잘 보인다. 대신 칭찬은 굳이 찾아서 해야 한다. 외모나 옷차림 칭찬 같은 겉모습의 칭찬이 아니라, 노력이나 성품이나 사람의 가치나 열정에 대해 칭찬하면 에너지가 올라갈 것이다. 오늘 애써 자신을 칭찬하는 날로 만들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