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Book_당신을 위한 필사책]
현시대의 사회문제에 맞서 저항하던 시인들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도 말이다.
언론의 순기능인 '알 권리'나
소설가들의 전유물처럼 쓰인 '리얼리즘'이 있었다면
시인에겐 함축된 표현으로 뿜어내는 '시적유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짤막한 시를 읽고서
문제를 깨우치고, 대안을 찾으며, 새 희망을 얻기도 한다.
이걸 제일 잘하던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잘 보이질 않는다.
하긴 시인만 안 보이는 것이 아니다.
소설가도, 언론인도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진은영의 시에서는 그런 것이 좀 보이려나
요즘엔 제대로 된 '시국선언'을 하는 인사들이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들의 목소리에 힘이 전혀 없다.
왜 그럴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상이 말세가 되어도 자기만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으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먹고 사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보고, 게으름을 그 원인으로 본다.
그래서 이를 '공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에도 기본적으로 반대하곤 한다.
물론 '기부'는 좋은 것으로 간주한다.
'베품'은 선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하기 싫은 모양이다. 꽤나 합리적이라고 뻐기면서
그래서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재기해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멋지고 합리적이고 명철한 생각을 했다고 자랑질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이런 논리라면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은 뒈져야 한다.
늙어서 아무런 노동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공공의 짐이 되지 말고 꺼지라는 사악한 악담도 서슴지 않을 기세다.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도 밥맛일게다. '시럽급여'라니 꿈도 꾸지 말라.
이런 일련의 모든 것들을 '공산주의'로 엮어버리고
'자본주의의 적'이니 당연히 배척해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하기 일쑤다.
일부 '극우의 목소리'가 아니다.
대통령도 그러고, 여론정당에서도 이를 찬성한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
지금의 대한민국은 공산국가인 중국과 엄청난 무역을 하고 있으며
수출로 많은 이익을 내고 있으며, 생필품을 수입하기도 하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이웃이자 파트너로 지내고 있다.
반면에 자유국가인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한국은 '머니머신'이라며, 미국을 위해서라면
그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영원한 원수도 없고, 영원한 동맹도 없다는 말이다.
오직 유연한 자세만이 옳은 자세다.
그런데 이런 '유연한 사고'가 인기가 떨어졌나보다.
극렬하다 못해 폭력을 저지르는 모리배보다 말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극악스러운 괴물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정의의 용사조차 마뜩찮을 지경이다.
정의의 망치라면 '단 한 번' 휘둘러서 극악스런 괴물을 제압할 정도는 되야 환호를 하려나?
그건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또 다른 폭력'일 뿐이지 않은가?
정녕 '전쟁'이라도 원하는 것인가?
그건 절대로 막아야 하는 거라는 걸, 정말 모르는가?
칼보다 강하다는 '펜'이 지닌 힘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할 것인지
우리 국민들이 국민들을 위해서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